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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영화관

Film: Comment2008/07/02 02:14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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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 at Gaze.

궤도 (김광호, 2007) ★★★☆

<궤도>는 주인공의 시선에 잡힌 두 발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자는 두 발로 종이를 자르고, 담배를 말고, 그걸 입에 가져간다. 남자에겐 두 팔이 없다. 마을에서 동떨어진 집에 혼자 사는 남자의 삶은 조용하고 고독하다. 낮에는 약초를 뜯고, 밤에는 TV를 보거나 기타로 매번 같은 멜로디를 튕기면서 시간을 보낸다. 남자의 초라한 얼굴엔 세상의 어떤 기쁨도 끼어들지 못할 것 같고, 팔이 없어 펄럭이는 옷소매는 처량하다.

폭풍우가 치던 어느 날 밤, 붉은 옷의 그녀가 처마 밑으로 찾아왔다. 남자는 그녀를 이미 두 번 본 적이 있다. 지친 모습으로 철길을 걷던 그녀를 먼발치에서 보았고, 숲에서 잠든 그녀와 마주치기도 했다. 아파 쓰러진 그녀를 간호한 지 며칠, 남자는 그녀가 누추한 집을 깨끗이 치워놓은 걸 보았다. 그녀는 그렇게 그의 곁에 머물게 되었지만, 그는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죽은 어미가 남긴 트라우마를 느낀다.

첫 장면을 보면서 저렇게 하면서까지 담배를 피워야 되나, 라고 생각했다. 건방진 생각이었다. 두 팔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담배를 피우지 말란 법은 없다. 그의 입이 내뿜는 연기를 보며 힘들게 말아 피운 담배의 맛이 더 좋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두 사람 사이에 은근히 싹튼 감정도 그럴 것이다. 사랑이건, 애정이건, 그냥 이름 모를 감정이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시대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은 어렵게, 어렵게 맺어진다. 귀머거리 여자는 남자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팔이 없는 남자는 수화를 하지 못하지만, 두 사람은 묵묵히 시선을 교환한다.


<궤도>는 거의 모든 장면이 두 사람의 시점쇼트로 이루어진 영화다. 그 남자를 보는 시선은 그녀의 것이고, 그녀를 보는 시선은 그의 것이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상대방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카메라의 시선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시점쇼트로만 연결된 롱테이크의 연속은 멜로드라마에 응당 나오는 흔해빠진 이야기들을 프레임 밖으로 몰아낸다. <궤도>엔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일어나지 않으며, 이야기는 두 사람의 시선이 빚어내는 감정의 교환으로 대체된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기이한 모습의 그에게 관심을 가진 소년 외에는), 그 또한 누군가를 바라볼 일이 없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파출부로 일하는 벙어리 여자에게 그 누가 관심을 가졌겠나. 그녀는 외롭고 지쳤을 것이다. 세상이 싫어 산골에 파묻힌 남자와 세상 속에서 소외됐던 여자가 바라볼 대상을 만난 건 아마도 처음이었을 게다. 영화는 정말로 진득한 방식으로, 서로 바라보고 마음을 나누는 행위가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한다.


그러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라보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가야만 한다. 여자는 웃는다, 그리고 그의 곁에 서기를 갈망한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해방되지 않은 그는 그런 그녀가 부담스럽다. 그녀가 자기 옆자리에 이불을 깔면 저리 치우고, 그녀가 머리를 감겨주려고 하면 터벅터벅 멀리 내뺀다. 그래도 소박한 결말을 기대했을 관객에게 <궤도>의 결말은 너무나 뜻밖이다. 감독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자멸의 드라마를 의도했다고 밝혔지만, 나는 감독의 비정한 결단 앞에서 많이 서글펐다.

북경영화학원에서 촬영을 전공한 김광호는 연변TV방송국에서 22년 동안 촬영과 PD로 근무 중인 인물이며, 그와 연변조선족 스탭들이 힘을 합쳐 완성한 <궤도>는 연변 최초의 독립영화로 기록됐다. 남자 역의 최금호는 실제로 두 팔이 없는 장애인으로서, 김광호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금호의 삶의 이야기>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궤도>의 주연을 맡았다고 한다. 참, 장률이 제작에 참여해서 그런지, <궤도>는 <경계>의 거울처럼 보인다.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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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1 - [Film: Comment] - 경계 (장률, 2006) : 나무를 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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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가별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왠지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로군요.

    2008/07/02 09:48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많이 슬펐습니다. 블록버스터 시즌에 이렇게 느린 영화를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008/07/03 17:10

Film: Special Column2008/07/01 02:13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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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저먼 특별전>


* 아래는 <넥스트 플러스>에 기고한 글이다.


죽음을 앞둔 데릭 저먼은 <블루>가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 했다. 80분 가까이 화면을 지배하는 푸른색이 사라질 즈음 저먼은 ‘시간 속에서 우리의 이름이 잊혀질 것이며, 아무도 우리의 작품을 기억하지 않으리라’라고 읊조린다. 그러나 저먼이 푸른색을 화면 가득 배치하면서 고착된 이미지에 대한 부정을 시도했듯이, 그의 탄식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정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의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졌고, 그의 작품이 차지하는 자리는 나날이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데릭 저먼의 작품들이 5년 만에 다시 우리 결을 찾아올 리 없는 것이다. 6월 27일부터 7월 1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데릭 저먼 특별전>은 그가 남긴 11편의 장편영화 전작을 상영하는 자리다. 여기서 11편 영화의 줄거리를 나불거릴 생각은 없다. 생전에 ‘내러티브 영화의 적’이라 불린 저먼의 영화에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한 이미지들이다. 영화 안에 줄곧 자신을 투영했던 저먼이기에 강렬한 이미지들은 그가 걸어온 여정의 기록에 다름 아니다. 이 글은 그 여정이 남긴 흔적을 서툴게 뒤쫓는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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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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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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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1979)


저먼의 모든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동성애의 이미지, 동성애에 대한 언급이다. 기숙학교 시절, 다른 소년과의 관계에서 목가적인 사랑을 발견했으나 기성세대로부터 끔찍한 존재로 취급받았던 저먼은, 성인 남성간 동성애 행위의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고 자유로운 성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던 196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며 성정체성 면에서 자기 확신에 이르지만, 80년대 중반, 호모포비아적인 법령인 ‘28조 법조항’이 입법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 시기를 통과한 저먼에게 섹슈얼리티는 쾌락과 함께 고통을 상징했고, 관계에 있어 강박적이면서 수동적이었던 저먼은 욕망과 억압의 대립 상황을 경험하곤 했다. 저먼의 영화에서 동성애가 다양한 형태로 제시되거나 심지어 양극단으로 표현되는 건 그래서다.

대표적인 예로, 주디 덴치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는 <천사의 대화>가 목가적이고 이상적인 동성애를 다룬 아름다운 작품인 반면, 동성애를 탄압해온 역사의 희생양인 영국 국왕을 등장시킨 <에드워드 2세>는 저먼이 게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만큼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리는 작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퀴어 시네마와 연결한 <가든>에서 에이즈 논쟁의 한 중심이던 자신이 직접 출연한 것에서 보듯, 저먼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게이들은 그의 분신인 양 느껴진다. 실제로 저먼은 <블루>를 찍은 뒤, 든든한 조력자였던 제임스 맥케이에게 “이제야 비로소 나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역사적인 인물들을 게이 아이콘으로 재해석한 <세바스찬>, <카라바조>, <전쟁 레퀴엠>, <에드워드 2세>, <비트겐슈타인> 등에서 저먼은 그들의 얼굴로 가장했던 것이다. 게이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된 말년의 저먼은 남성 드랙 교단인 ‘종신 면죄부를 얻은 자매들’로부터 ‘성자’로 시성되었는데, 데뷔작 <세바스찬>이 동성애를 종교로 승화한 성인의 이야기였음을 떠올린다면 가슴 저미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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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대화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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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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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몰락 (1987)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부터 감독 마이클 파웰에 이르는 급진적인 낭만주의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저먼에게 기준점을 제공한 건 16세기 르네상스였다. 대영제국이 몰락하는 과정을 몸소 지켜보았던 그에게 16세기는 양가적인 측면이 있는데, 그 시기를 잃어버린 이상향으로 동경하는 한편 폭력적인 현실의 비극을 잉태한 근원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눈에 비친 대처시대의 타락한 영국을 그린 <희년>은 바로 그런 인식 아래 출발한 작품이다. 마찬가지로 저먼은, 영국 르네상스의 전형적 인물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기초로 <천사의 대화>와 <템페스트>를 만든 바 있으나 나중엔 셰익스피어보다 어둡고 급진적인 크리스토퍼 말로의 <에드워드 2세>로 돌아서게 된다.

정원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했기에 정서적으로는 전원시대를 그리워했지만, 반동적인 시각에서 인용되는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을 이성적으로 해석하고자 고심했던 저먼은 (<희년>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조언자이자 당대의 사상가로 등장하는) 존 디의 카발라 신비주의에 한동안 심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거기에다 카를 융의 <심리학과 연금술> 등을 읽으며 연금술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무의식적인 바탕 하에 시대를 파악하고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던 저먼은 직관이 철학보다 현실을 더 확실히 깨우치게 해준다고 생각한 것 같다(<비트겐슈타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 따위는 집어치우고 현실을 개선하라고 말한다).

<희년>, <카라바조>, <대영제국의 멸망>, <에드워드 2세> 등의 작품에서 각 시대가 명확하게 구분되기는커녕 혼재되어 있고, 시대에 대한 묘사도 세세한 디테일을 따지기보다 절충의 방식을 따른 건 그런 연유에서 기인한다 하겠다. 그렇게 완성된 저먼의 실험영화들은 사실주의와 전혀 상관없지만 놀랍게도 시대의 혼란과 위기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예언한다. <대영제국의 몰락>에서 소외되고 내쫓기며 처형되는 국외자들, 벤자민 브리튼의 음악을 시적으로 풀어낸 <전쟁 레퀴엠>에서 전쟁터로 내몰려 죽음에 휩싸이는 젊은이들, <가든>에서 현대의 악인으로 묘사된 기업, 교육, 미디어, 경찰의 모습은 저먼이 시대를 얼마나 비판적으로 읽고 있는지 잘 드러낸다. 이들 영화는 자주적인 삶의 방식과 정신적인 독립을 빼앗긴 인간에게 닥친 위협을 빌려 묵시록적인 미래를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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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레퀴엠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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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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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2세 (1991)

다시 <블루>로 돌아가서, 저먼은 ‘고통스러운 운명’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질문한다. 그나마 낭만적인 <천사의 대화>에서조차 남자는 내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고, <세바스찬>의 세바스찬은 끊임없이 종교적, 성적 박해를 당하고, <희년>의 풋내기 가수는 헛된 유명세를 갈망하다 죽음을 맞고, <템페스트>의 요정은 프로스페로의 손아귀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고, <카라바조>의 카라바조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대영제국의 몰락>의 소년은 황폐한 공간에서 헤로인으로 시름을 잊고, <전쟁 레퀴엠>의 무명병사는 죽어서도 철조망에 묶여 있고, <가든>의 게이 연인은 십자가를 짊어진 채 수난의 길을 걷고, <에드워드 2세>의 노동자 피어스 가베스턴은 귀족들의 침 세례를 견뎌야 하고, <비트겐슈타인>의 비트겐슈타인은 타인들의 몰이해와 철저한 고독 아래 신음한다.

그런데 이렇게 고통 받는 사람들의 영화가 비극적으로 아름다운 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절망과 두려움에 떠는 그들을 보듬으려는 저먼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한다. 죽음의 벌을 키스의 꿈으로 바꾼 <에드워드 2세>나 마법을 동원해 낙관적인 상황을 구사한 <템페스트>에서 저먼은 제한적인 수단을 통해서나마 위안을 도모하려 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내비친 <전쟁 레퀴엠>과 <가든>과 <에드워드 2세>의 마지막 장면에선 꿈을 버릴 뜻이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

다시 말하지만, 저먼은 무의식과 직관 속에 앞날을 예견한 인물이다. 푸른 화면으로 시작하는 데뷔작 <세바스찬>이 마지막 작품 <블루>와 이뤄낸 신비로운 조화가 그런 것이며, <희년>과 <대영제국의 몰락>과 <전쟁 레퀴엠>이 또렷이 알아맞힌 미래가 그렇다. 그가 꿈꾼 유토피아가 현재로선 요원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죽을 때까지 간직한 사랑과 그의 염려하는 마음이 맺은 낙관의 힘을 믿는다. 그건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의 끝을 <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대사로 갈음한다. “수수께끼란 없다. 일단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답을 얻는 것도 가능한 법이다.”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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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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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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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우유소년4L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릭 저먼 회고전> 이라는 말에 댓글을 달 엄두를 내게 되었네요..
    참 오랜만이고요..
    잘 지내시죠?

    한동안 참 자주 오던 블로그였는데, 뜸해졌네요. 영화를 거의 보지 않고 있고요.

    오랜동안 일을 쉬다가 근래에 취직을 해서 무척 바빠요.
    무언가 다른 것들은 엄두를 못 내네요.

    넥스트 플러스를 손에 쥐어본 지도 참 오래되었어요...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조금은 잘 모르겠네요. : ) ... ...

    건강하시고, 글 또 볼 수 있기를..

    2008/07/02 03:27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간혹 들러주세요. 그러다 글 남겨주시면 그게 더 반가운 거죠.

      새로운 일을 하시게 됐군요. 전 직장이란 데를 다닌 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네요. 좋은 성과 있기를 바랍니다.

      2008/07/03 17:08

Film: HomeVideo2008/06/29 14:53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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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고전 SF영화 컬렉션>
 
The Classic Sci-Fi Ultimate Collection

무성영화 때부터 SF영화의 걸작을 만들어온 유럽과 달리, 할리우드가 이 장르에 눈길을 돌린 건 1940년대 말부터다. 이전의 장르영화 시기는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었기에 SF영화 같은 판타지가 자리할 곳이 없었다. 극장을 찾는 관객의 발걸음이 줄어들면서 상황은 바뀌었고, 영화사들이 찾아낸 묘수 중의 하나가 SF영화였다.

강력한 핵무기와 로켓이 개발됐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정부가 공공연하게 공산주의의 공포를 퍼뜨릴 무렵, 바야흐로 일상적인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과학은 두 개의 얼굴로 비쳤다. 과학의 유익한 측면에 의지했던 사람들은 그 뒤로 낯설고 두려운 무언가가 숨어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정서를 반영해 공포영화와 결합한 SF영화는 관객의 흥미를 끌 수밖에 없었으며, 1950년대는 SF영화가 폭발한 시대로 기록된다. 게다가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저예산으로 꾸민 특수효과면 족했으므로 SF영화를 만드는 데는 위험이 적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앞을 다투어 B급 SF영화를 쏟아내던 영화사 가운데 유니버설 사가 빠질 리 없었다. 일찍이 저예산 공포영화로 재미를 본 유니버설 사에게 SF영화는 B급영화의 광맥이었다. 유니버설 사의 SF영화 중엔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타란툴라>처럼 장르의 대표작으로 남은 작품도 있으나, 대다수는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유니버설 고전 SF영화 컬렉션’은 시간을 건너 되살려낸 다양한 SF영화들을 선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표정의 남자배우와 세상에서 가장 비명을 잘 지르는 여자배우와 낯간지러운 홍보문구(‘공포에 얼어붙을 당신의 피, 인간이 알고 있는 그 어떤 공포보다 무서운’)가 붙은 싸구려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연변이 생명체(<타란툴라>, <두더지 인간>, <교정의 괴물>), 외계로부터의 가공할 침입자(<살인 운석의 침공>), 거대 괴수(<미지의 땅>, <죽음의 사마귀>) 등 B급 SF영화의 전형적 소재를 다룬 영화들과 그밖에 원자시대를 은유한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닥터 사이클롭스>,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인간을 비판한 <거머리 여인>, 발 류튼의 공포영화가 연상되는 <코브라 밀교>가 박스세트를 풍성한 선물세트로 만들고 있다. (영화별 소개는 글 아래를 참조할 것)

사실인즉, 굳이 냉전시대의 알레고리에 집작해 열 편 영화의 순수한 즐거움을 잃어버릴 필요는 없다. 요즘 세대에겐 B급 SF영화의 유치함과 진부함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맛이 더 클지 모르며, 더불어 현대 SF영화에 영향을 끼친 장면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봐도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이는 미술, 특수효과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정성들여 만든 효과들에서 손의 질감이 전해진다. B급영화의 특성 상 낯익은 배우라곤 나오지 않지만, <타란툴라>의 마지막 장면에는 현재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이자 배우인 남자가 잠깐 등장한다(누굴까?).

보이지 않는 적,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과 싸우는 인간들의 정신적 공황을 다룬 열 편 영화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낙관적인 결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시민, 과학자, 의사, 언론인, 경찰, 군인은 놀랍도록 건강한 존재들이어서 잭 피니가 <바디 스내쳐>의 마지막 장에 써놓은 각오 - 광대한 우주 그 어디에서도 우리를 패퇴시킬 수 있는 존재는 없다 - 를 기억하게 한다. 현실의 혼탁한 세상도 그렇게 명확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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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는 B급영화라는 선입견이 무색할 정도로 근사하게 복원된 영상을 수록했다. 예고편 외에 DVD의 부록이 전혀 없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다. 하기는 50년 전에 만들어진 B급영화에 풍부한 특별영상이 지원된다면 그게 더 어색할 노릇이다.

<타란툴라>, <두더지 인간>,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살인 운석의 침공>, <교정의 괴물>를 수록한 첫 번째 박스세트는 한 때 절판돼 고가에 거래된 적이 있는데(이베이와 아마존 등에서 백 달러가 넘는 가격으로 판매하던 쓰레기 같은 녀석들은 이제 우스운 꼴이 됐다), 이번 출시판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박스세트의 합본인대다 가격마저 저렴하다. 구입을 망설일 이유가 없는 필수 소장품목이다. (ibuti, 2008.6. 씨네21 656호)

<유니버설 고전 SF영화 컬렉션>
The Classic Sci-Fi Ultimate Collection Vol. 1, 2


<닥터 사이클롭스> / <타란툴라> / <코브라 밀교> (*) /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 / <두더지 인간> / <살인 운석의 침공> / <죽음의 사마귀> / <미지의 땅> (**) / <교정의 괴물> / <거머리 여인> (*)
784분 / 1.33:1 스탠더드, 1.85:1 아나모픽(*), 2.35:1 아나모픽(**) / DD 2.0 영어 / 영어 자막 / 유니버설(미국, 6장) 
< 화질 ★★★★  음질 ★★★  부록 ☆ > 


* 아래 작품 소개는, 연대순이 아니라 박스세트에 수록된 순서를 따랐다.


<타란툴라> Tarantula
(1955년 / 잭 아놀드 / 80분)

외딴 사막에서 생물학자들이 미래의 인구증가와 식량부족에 대비해 동물을 거대하게 배양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실험물질에 피부가 노출된 과학자들이 선단비대증세를 보이다 죽는 가운데, 파괴된 실험실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거미가 사람들을 위협하며 돌아다닌다. <타란툴라>의 과학자는 이런 유의 SF에 꼭 등장하는 과학자의 전형이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고 이익을 주기보다 과학의 불안한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들로 비친다. 또한 극중 보안관이 건방진 과학자에 대고 “똑똑한 사람들은 예절을 배워야 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과학자들은 자기들의 연구에 미친 밥맛없는 인물들로 묘사된다(예쁜 여자 과학자 한 명만 빼고).

<타란툴라>에서 과학자들이 먼 미래로 상정한 시기는 2000년이다. 영화엔 "1950년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대사가 나오지만, 2000년이 시작되고 벌써 8년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은 정녕 무섭다. <타란툴라>를 이야기할 때 꼭 언급되는 게 또 하나 있다. 결말부에서 폭탄 투하를 위해 공군이 출정하는데, 편대를 이끄는 파일럿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무명시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에 출연해 유명해지기 전, 싸구려 카우보이물에나 등장하던 그가 B급영화에도 출연했던 것이다. 안광을 번뜩이는 건 무명일 때도 마찬가지여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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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인간> The Mole People
(1957년 / 버질 보겔 / 78분)

일군의 과학자들이 험준한 산 정상 밑의 지하세계로 떨어지는데, 그 곳엔 고대문명을 간직한 백색 인간들이 살고 있다. 그 곳 사람(특히 여성)은 폭군과 사제의 지시에 따라 무지를 강요당한 채 희생되고 있으며, 특히 두더지 모습의 변종 생명체들은 백색 인간의 가혹한 지배를 받는다. 지하세계라는 가상의 공간을 꾸며놓은 미술 장치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돋운다. 르네 랄루의 1973년 작품 <판타스틱 플래닛>보다 철학적인 바탕은 빈약하지만, 여러 유사한 설정들을 비교해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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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The Incredible Shrinking Man
(1957년 / 잭 아놀드 / 81분)

평범한 남자가 보트여행 도중 방사성 안개(낙진)를 접한 뒤 몸이 점점 줄어든다.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는 일상이 점점 공포와 모험의 공간으로 변하는 상황을 근사한 시각효과로 표현했다. 부부관계와 직업 같은 현실 문제들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다뤘고, 당시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SF영화들과 달리 분명한 결말을 추구하지 않은 점 등은 높이 살 부분이다. 남자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을 존재가 되어서야 저항을 멈추고 우주와 신과 자신의 존재를 깨닫기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우울한 결말을 보여준 셈인데, 이 영화가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그러한 결말의 힘이 컸을 것이다. 원자시대의 공포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 중 하나이며, 거대사회 속에서 갈수록 외소해지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사려 깊은 걸작이라 하겠다. 다음 해에 만들어진, 다소 우스꽝스런 <50 피트 여인의 공격>과 정반대 위치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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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운석의 침공> The Monolith Monsters
(1957년 / 존 셔우드 / 77분)

외계로부터 온 미지의 무시무시한 존재를 다뤘다는 점에서 <바디스내쳐>의 여러 버전과 연계해서 읽어보면 좋을 작품이다. 유니버설 SF영화의 주역인 잭 아놀드가 각본에 참여했다. 사막지대에 운석 조각들이 떨어지는데, 이 운석은 물과 결합될 경우 가공할 물질로 성장해 사람들을 굳어 죽게 만든다. 급기야 사막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운석은 마을로 다가오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댐을 폭파하려고 한다. 그러나 댐 폭파를 허가해야 할 주지사는 자리를 비운 상태. 어마어마한 크기로 증식하는 운석 자체를 외계 생명체로 다룬 점이 이채로우며, 댐 폭파 장면 등 나름대로 스펙터클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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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의 괴물> Monster on the Campus
(1958년 / 잭 아놀드 / 77분)

선사시대의 괴물고기가 발견되는데, 그것과 접촉한 동물과 인간은 난폭한 괴물로 바뀐다. 흥미로운 건 설령 난폭한 괴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다시 예전의 존재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반복된다. 자기 내부에 괴물이 잠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과학자는 스스로 실험의 대상으로 삼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피하지는 못한다. 인물과 설정, 전개 과정 등이 <헐크>, <인크레더블 헐크>의 그것과 많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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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사이클롭스> Dr. Cyclops
(1940년 / 어니스트 B. 쇼드색 / 77분)

파라마운트 사가 제작한 <닥터 사이클롭스>는 박스세트에 수록된 유니버설 사의 작품들과 제작사가 다를 뿐더러, 시기적으로도 차이가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스튜디오의 재편 과정에서 유니버설 사의 작품군에 속해진 것으로 보인다. <킹콩>, <가장 위험한 게임>을 연출한 어니스트 B. 쇼드색의 작품인 만큼 원시림에서 벌어지는 액션 어드벤쳐와 SF 스릴러의 결합이 단연 발군이다.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미치광이 과학자는 아마존 정글에서 방사성 물질로 비밀스런 실험을 진행 중인데, 조사 차 그 곳을 방문한 동료들이 실험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1/5 사이즈로 줄여놓는다. 생명체를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와 졸지에 나약한 존재로 전락한 인간들의 숨바꼭질이 때론 코믹하고, 때론 무시무시하게 전개된다. 68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의 특수효과가 놀라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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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브라 밀교> Cult of the Cobra
(1955년 / 프랜시스 D. 라이언 / 80분)

1945년, 군함이 잠시 정박한 틈을 타 아시아의 문물을 구경 중이던 미군 병사들이 외부인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 밀교 의식을 몰래 목격할 기회를 잡는다. 뱀으로 변신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숭배하는 의식이 절정에 오를 즈음, 한 병사가 규칙을 깨고 사진을 찍는 바람에 의식은 난장판이 된다. 그 날, 한 명의 병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이후 귀국해 시민으로 살아가는 다섯 남자에게도 죽음의 복수가 다가온다. 아름다운 여성과 아시아 문화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반영된 작품으로서 발 루튼 호러의 분위기가 연상되는데, 그 중에서도 이국에서 건너온 신비한 존재, 두려움을 자아내는 전설, 그림자의 이미지 등을 활용한 점은 이 영화를 <캣 피플>의 혈통 아래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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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땅> The Land Unknown
(1957년 / 버질 보겔 / 78분)

남극을 탐사하던 도중 수심 수천 미터 아래 땅으로 불시착한 네 사람은 열대성 기후와 선사시대의 풍경과 마주한다. 무선은 연결되지 않고 헬기의 수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포악한 공룡과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시시각각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데, 그들은 이전에 그 곳에 떨어졌던 사람 중 생존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그는 자기가 보유한 헬기 수리용 부품과 여자대원의 교환을 요구한다. 시네마스코프로 촬영된 선사시대의 풍경과 공룡 등의 시각효과가 상당히 그럴싸한 <미지의 땅>은 해리 O. 호이트의 <잃어버린 세계>(1925)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1993)을 이어주는 시도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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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사마귀> The Deadly Mantis
(1957년 / 네이선 주란 / 79분)

남극 부근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북극의 빙산 안에 갇혀있던 거대한 사마귀가 풀려난다(남극과 북극이 연결되어있나?). 군사기지, 전투기, 에스키모 거주지, 고속버스를 차례대로 공격하던 사마귀가 워싱턴으로 접근하자, 고생물학자는 군대와 팀을 이뤄 사투를 벌인다. 대규모 군사 공격 장면의 연출이 압권이며, 섬뜩한 이미지의 사마귀가 안개와 어둠 속에서 공격하는 장면의 공포는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 같은 근작들에 버금간다. 터널에 갇힌 채 죽은 사마귀를 보여주는 엔딩은 할리우드 제작진이 B급영화라고 해서 마냥 서툴게 만들지는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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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머리 여인> The Leech Woman
(1960년 / 에드워드 데인 / 77분)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박사에게 흑인 노파가 찾아와 자신은 140살이며, 아프리카의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를 마련해주면 젊음을 되살리는 광경을 보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난도 부족의 여인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예전의 젊음을 되찾아 짧은 행복을 누린 뒤 죽는다는 것이다. 그 비법이란 갓 죽인 남자에게서 뽑은 체액과 부족 고유의 호르몬 제재를 섞어 먹는 것인데, 남편의 꼬드김에 속아 일종의 기니어피그로 따라나섰던 부인은 도리어 남편을 제물 삼아 젊음을 회복한다. 그러나 약효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회복된 젊음은 일시적으로만 유지되며, 약효가 사라지면 엄청나게 늙어버린다는 사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호감을 가지는 남자와 젊음을 유지하려고 발악하는 여자가 주제인 <거머리 여인>은 전체적인 완성도가 뛰어난 드라마다. 마지막의 성급한 처리가 눈에 거슬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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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TISTORY 운영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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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도 티스토리와 함께 회원님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08/07/01 14:06
  2. BlogIcon 보리장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소개된 작품들에 출여한 모든 인물들이 보리밥,삶은달걀,군고구마를 먹고 배출한 막 구워낸 신선하고 따뜻하고 구수한 방구냄새 맡아보고 시퍼요.

    2008/07/01 16:39

Film: Comment2008/06/28 03:26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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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Can't We Be Friend?


레몬 트리 Etz Limon (에란 리클리스, 2008) ★★★☆



2008년은 이스라엘이 건국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반대로 유태인과 서구 열강에 의해 그 곳에서 살아오던 사람들이 쫓겨난 지 6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건국 60주년과 나크바 60주년의 명암이 엇갈린 올해, 두 편의 이스라엘 영화 <레몬 트리>와 <바시르와 왈츠를>(부천영화제 개막작)이 베를린 영화제와 칸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다. 두 영화는, <레몬 트리>의 대사처럼 3천 년 혹은 60년 동안 풀지 못한 문제 앞에서 서툰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대신 이스라엘의 죄의식을 건드리고, 손댈 수 없을 정도로 헝클어진 쓰라린 현실을 드러낸다.


The West Bank. 우리에겐 요르단 강 서안으로 익히 알려진 그 곳.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레몬 트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에 위치한 레몬 농장이 진짜 주인공인 우화다. 팔레스타인 여인 살마에게 아버지가 물려준 레몬농장은 삶의 터전이다. 10년 전에 남편을 여의고 세 아이마저 곁에서 떠나보낸 뒤, 땅과 레몬 나무에 온 정성을 쏟아온 그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이스라엘의 신임 국방장관이 이사를 오면서 경계너머 이웃이 되었는데, 이스라엘 보안부는 살마의 농장이 국방장관 가족의 신변에 위험 요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나무를 몽땅 베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것이다.

변호사를 구한 살마는 군사법정에 재판을 청구한 결과 패소하지만, 그에 승복하지 않고 대법원에 항고하기로 한다. 그녀의 뜻은 소박하다. 자신은 레몬 농장을 계속 지키고 싶을 따름이며, 막강한 정부라고 해서 남의 땅을 마음대로 장악하면 안 된다는 것. 이어 외국 언론과 정부가 그녀의 처지에 관심을 가지면서 레몬 농장 스캔들은 국제적인 이슈로 부상한다. 그러나 독립국이 아니라 자치지역인 팔레스타인에 사는 여인의 대항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고, 이스라엘 장관의 안전 문제가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우위에 있음이 끝내 재확인된다. 

<레몬 트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에 설치된 장벽이 내뿜는 폭력성의 알레고리다. 이스라엘이 안보를 빌미로 2002년부터 건설 중인 700여 킬로미터의 거대한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심리적, 경제적인 고통을 안겨주는 괴물이다. 인종 차별은 물론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장벽에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힘을 앞세워 장벽 건설을 계속하고 있다. 유태인과 열강이 결합해 만든 폭력적 결과물인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60년 동안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초래했으나, 비극의 역사는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무를 베어낸 텅 빈 공간을 <레몬 트리>의 결말에 배치한 에란 리클리스는 문제가 또 다른 문제의 불씨가 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감독이 말했던 바 <레몬 트리>는 딱딱하고 건조한 정치 드라마로 기능하지만은 않는다. <레몬 트리>는 살마와 국방부 장관의 아내인 미라가 무언으로 공조하는 여성 드라마로서도 감동적이다. 살마의 고통은 철권 정부에 저항하는 데서 오는 게 사실이지만, 그간 농장 내부에서 폐쇄적으로 살았던 그녀는 재판의 진행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정신적 테러에 직면한다. 몇몇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살마가 연하의 변호사에게 연정을 품었다고, 죽은 남편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고, 그리고 여성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국제) 사회에 노출되었다고 보복을 경고한다. 게다가 막막한 그녀의 형편일랑 아랑곳하지 않던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제안한 보상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앞세운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냉담은 살마에게 보이지 않는 적이다.


장관의 아내인 미라는 살마의 딱한 현실에 동감하면서도 잘나가는 남편의 발목을 잡을 용기는 없었다. 농장에서 불쑥 등장할지 모르는 테러범이 내심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감히 행동하지 못하는 도덕적인 이스라엘인과 진실의 편에 서기를 망설이는 현대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살마와 반대로, 미라는 영화 내내 갈등을 거듭할 뿐이다. 살마를 보며 안타까움과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던 그녀는 3천 년 묵은 문제의 무게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녀에게 진정 필요한 건 거부의 몸짓이었다.


<레몬 트리>는 이스라엘 감독이 만든 이스라엘 영화다. 이 영화의 미덕은 팔레스타인에 관용을 베푸는 척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데 있다. 우리는, 현실 정치의 문제란 절대 쉽게 풀리지 않는 법이며, 문제의 해결에는 수많은 희생과 아득한 시간이 필히 요구된다는 생각에 길들여져 있다. 변화는, 당연하다고 여긴 대상과 생각을 부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레몬 트리>는 작은 행동에서부터 희망이 피어날 거라고 말한다. 어딘가 낙관의 씨앗을 품고 있는 씁쓸한 결말은 (혹자에겐 나이브해 보일) 영화의 메시지를 강한 힘으로 뒷받침한다.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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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가별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봐야겠습니다. 내용이 훌륭하네요.

    2008/07/02 09:51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규모 개봉하는 영화라 상영관을 찾기가 쉽진 않겠네요. 예전엔 영화 한 편 보러 도시를 넘어가기도 했습니다만, 요즘엔 그러지 않지요. DVD가 나오면 한 번 구해보세요. 보시면서 보낸 시간은 충분히 보상할 영화입니다.

      2008/07/03 17:12

Film: HomeVideo2008/06/20 00:14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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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온 살라만더> パビリオン山椒魚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영화라 줄거리 소개부터 시시콜콜 해야겠다. ‘킨지로’는 150살 된 국보급 도룡뇽의 이름이다. 니노미야 가문은 대대로 킨지로를 관리하는 ‘살라만더 킨지로 재단’을 운영하면서 정부로부터 거액의 지원을 받아왔다. 가문의 막내 아즈키(카시이 유우)는 농향회라는 단체의 회장이 재단을 노리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뒤 킨지로와 함께 도피한다. 한편 킨지로의 엑스레이 사진을 의뢰받은 엑스레이 기사 호이치(오다기리 조)는 작업장으로 숨어든 아즈키와 킨지로를 보고 기겁한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즈키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호이치는 그녀의 엄마를 찾아 나선다.

여기부터 영화에 대한 어떤 짐작도 금물이다. <파빌리온 살라만더>에는 당신이 상상한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으며, 평범한 내러티브나 논리적 연결 같은 건 철저히 거부당한다. 혹자는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떠올릴 법도 하지만, <파빌리온 살라만더>는 어떤 장르에도 관심을 두지 않거니와 당연하게도 장르의 규칙 따위를 해체하려는 의도 또한 없다.

그렇다면 영화의 이 이상한 모양새는 뭐란 말인가. 만국박람회가 열린 1867년의 파리와 현대의 일본을 통해 시공간적으로 상당히 두터운 텍스트를 만들려고 했다는 토미나가 마사노리 감독는 제작 현실 여건으로 인해 얄팍한 내용과 억지 스타일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감독이 별 뜻 없이 찍었다는 장면들과 이해불가의 이야기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파빌리온 살라만더>는, 간혹 초현실의 영역까지 발을 뻗는 영화의 비현실성, 그리고 조금씩 얼이 빠져서 도리어 사랑스러운 인물들과 어울려 놀이하듯이 감상한다면 괜찮을 무정부적 코미디이다. 참, 주연을 맡은 오다기리 조와 카시이 유우가 촬영 도중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는 바람에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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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의 영상이 평균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음량이 떨어지는 편이므로 볼륨을 올린 다음 시청할 것을 권한다. 메이킹 필름에 해당하는 ‘후에고 엑스포 2006’(34분)은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나 유심히 관찰하면 흥미로운 현장을 담고 있다. 감독, 스태프, 배우의 공감대 형성에 맞춰 흘러가는 현장의 모습은 “거의 모든 장면이 애드리브로 구성됐다”는 카시이의 말 그대로다. 내용을 이해할 수 없던 오다기리가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감독은 “근데 그런 게 제일 재미있거든요”라고 대답하는데, 그 때 오다기리가 짓는 헛웃음은 나중에 영화를 본 관객의 뜨악한 반응을 예견한 것이다.

카시이와 오다기리의 인터뷰(12분)는 그들에게도 낯설었을 영화와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고, 감독 인터뷰(13분)에서 토미나가는 최초 아이디어와 완성된 영화의 차이를 설명한다. 과장이 더 심했다는, 그리고 제목에 더 어울린다는 오리지널 대본은 과연 어땠을까? (ibuti, 2008.6. 씨네21 655호)


<파빌리온 살라만더> パビリオン山椒魚 (The Pavillion Salamandre)
2006년 / 토미나가 마사노리 / 98분 / 1.85:1 아나모픽 / DD 2.0 일본어 / 한글 자막 / 태원엔터테인먼트
< 화질 ★★★☆  음질 ★★★  부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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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도룡뇽이 생각보다 무거워 놀랐다는 카시이 유우.
옆에서 웃는 남자가 토미나가 마사노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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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촬영을 위해 잔뜩 포즈를 잡은 두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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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기리 조와 카시이 유우의 다정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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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잉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다기리조를 사랑합니다~^^

    2008/06/20 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