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2011 프리뷰 (1): 이명세 특별전
* 아래는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의 메인카탈로그 용으로 쓴 글이다. 사실 이명세 영화를 프리뷰했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래 영화를 극장에서 본 관객이 지금 몇이나 될까. 이제는 홈비디오로조차 만나기 힘든 작품들이다.
개그맨 (1988)
<개그맨>이 <바보선언>보다 늦게 도착한 것인가, 아니면 <첫사랑>이 <8월의 크리스마스>보다 빨리 출발한 것인가. 이명세의 영화가 거론될 때마다 아직도 형식주의자란 반쪽 이름만 호명되는 걸 보면, 작가 이명세에 대한 해석이 언제 시도됐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성공시대>와 <칠수와 만수>가 등장한 해, 너무나 동떨어진 <개그맨>이 나타났다. 사회에 대한 진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영화가 지지받던 시대에 얼핏 몽환적 세계관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개그맨>은 용서할 수 없는 배신자였을 것이다. 더욱이 미래와 전진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개그맨>은 버려야 할 유산이었을 거다. 각본을 쓴 이명세, 배창호는 (<고래사냥>의) 병태와 민우와 춘자를 다시 불러내 종세, 도석, 선영이라 부른다. 그리고 (<바보선언>의) 똥철과 육덕과 혜영이 미처 가보지 못한 곳까지 카바레 개그맨, 동네 이발사, 얼치기 악녀를 끌고 간다. 냉소적이거나 굴레에 매여 헐떡이던 선배들의 삼인조 블랙코미디는 여기로 와선 현실에 대고 딴청을 피운다. 사회의 아래 귀퉁이에서 살다 별안간 총자루를 손에 쥔 세 인간은 스스로, 완성되지 못한 영화로 화한다. 그리고 공포에 떠는 도석이 차라리 꿈이길 바란다고 말하는 찰나, <개그맨>은 그 모든 게 한 여름의 꿈이라고 말해준다. 그러게, 영화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개그맨>은 영화를 만드는 행위에 대한 솔직한 대답이었을까, 아니면 힘겨운 시대를 지나며 영화를 만드는 자의 푸념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영화에 미친 자의 향수어린 고백이었을까.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0)
기대를 배반하는 내러티브 전략으로 질주한 <개그맨>을 지나, 이명세는 두 번째 작품에서 자기 영화의 시각언어를 뚜렷이 선포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남자가 관객을 보며 말을 붙이고, 여자의 마음이 관객 쪽으로 고백한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지금, 그러니까 1980년대 말의 시점에 만들어진 1980년대의 사랑이야기로 포장돼 있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모든 게 십여 년 후의 어느 지점에서 회고한 것임을 밝힌다. 앞뒤를 바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현재를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주제다. 주인공 상훈이 ‘그와 아내의 소박한 생활, 그의 미숙함과 그녀의 순진함’ 아래 꿈틀대는 ‘생활의 고통, 가난, 박탈감’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미래의 성공한 작가 상훈은 이미 시간을 경험한 자로서 무엇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 알고 있으며, 그는 사랑과 순수를 오롯이 건져 올리고 전면에 배치한 다음 그것으로 인해 힘겨운 때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실제론 통과 중이라고) 토로한다. 그러므로 동화적이고 때때로 유치한 이미지들은 영화의 스타일을 구성함과 동시에 그 자체로 삶의 비루함을 극복하도록 돕는 장치이자 이야기를 숨 쉬게 만드는 줄기를 형성한다. 2007년 작품 <M>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대구에 해당한다. 인기 작가 민우는 분열된 현재를 살고 있는데, 영화는 그 원인을 과거의 망각에서 찾는다. 과거로부터 불러낸 여자 미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여주인공 미영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미래가 소환한 과거의 기억에 초점을 맞춘 두 영화에서 ‘현재’는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첫사랑 (1993)
<첫사랑>은 초기 이명세 스타일의 정점이다. 이어 붙인 사진이, 벽에 비친 그림자가, 저속 촬영된 대상이, 블루스크린 앞에 선 인물이 저마다 펄럭이고, 여기에 콜라주와 애니메이션이 질세라 가세한다. 으뜸은 ‘그래픽으로 표현된 빛’이다. <형사>, <M>에서 시린 빛의 향연을 펼치기 전, 이명세는 빛을 색채로 칠하곤 했다. 빛의 속성상 어쩔 수 없이 동반하는 음영을 물리친 채, 이명세는 물감으로 빛의 반짝거리는 얼굴만을 재현하고자 한다. 극중 인물이 바라보는 저녁노을처럼, 아름다운 색과 은은한 빛이 삶을 채색하고 비추기를 바란다. 두 전작이 슬픔을 밑으로 품고 있다면, <첫사랑>은 너저분한 현실로부터 아예 등을 돌린다. 오해하지 않기를, 무지하거나 외면하는 게 아니라 온 힘을 다해 거부하려는 거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나카하라 슌의 <벚꽃동산>과 <첫사랑>은 여러모로 닮았다. 두 영화는 고전 무대극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근대의 입구에서 서성이는 여고생의 무리와 한 여대생은 작금의 시대가 초래한 비인간적 상황과 비극을 애써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 한다. 곧 닥칠 ‘순수의 종말’을 예감한 듯, 기실 그녀(들)는 처절한 몸짓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첫사랑>은 결국 첫사랑의 아이러니 앞에서 이를 악 물고 알싸한 슬픔을 이겨내려는 소녀의 이야기 아니던가. <첫사랑>의 백미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3분의 롱테이크다. 아침이 가고 저녁이 오고 여름이 지나 겨울과 봄이 순환하는 과정을 골목길 하나로 표현한 이명세는 꽃다운 열정 뒤의 평범한 삶 속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남자는 괴로워 (1994)
이제 이명세의 영화는 성인기로 접어든다. 경계에 선 때문일까, <남자는 괴로워>는 양면성을 띤다. 슬랩스틱 코미디가 낯선 웃음을 주는가하면 군데군데 끼어든 소시민 드라마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희화된 양식으로 직장생활의 애환을 그리고 있지만, 또 다른 축에선 성인기에 진입하기 전의 두려움과 불안을 다룬다. 때는 IMF가 터지기 몇 해 전인 1994년, 급변하는 기업 및 사무환경과 전근대적인 기업문화 사이에서 직장인으로 살아남자면 고달픈 하루하루를 버텨야 한다. 이명세는 정감 어린 마을, 예쁜 세트, 소년의 감성을 버리고 속도와 욕망이 팽배하는 도시 속으로 뛰어든다. 영화의 도입부는 희화와 과장의 연속인 전반부를 대표한다. 음주 후 곡예 운전하던 주인공은 마침내 사고를 내고, 수많은 직장인이 출근하느라 한바탕 소란을 벌인 뒤의 지하철역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어느 직장에나 있을 법한 인물들이 하나씩 소개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실제보다 높은 톤으로 말하고 얼굴의 모든 근육을 동원해가며 표정을 짓는다. 흡사 거창한 웃음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는 투이며, 생존하려는 자의 위기감은 급기야 영화의 톤을 반전시킨다. 이명세의 영화에서 인물은 잠자는 행위를 빌려 ‘영화의 꿈’으로 들어간다. <남자는 괴로워>에서 잠은 꿈으로, 그리고 꿈은 죽음으로 연결된다. 희극적 분위기는 이전보다 더 강해졌으나, 이명세는 절박한 심정으로 코미디에 임한 게 아닌가 싶다. 그 마음이 서린 두 장면 - 몽유병에 걸린 남자의 밤 걸음, ‘싱인 인 더 레인’을 본뜬 빗길의 뮤지컬은 가히 불멸이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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