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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27 데쓰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2007) by ibuti
Film: Comment2007/08/27 11:26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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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st Must Die!

<데쓰 프루프 Death Proof> (쿠엔티 타란티노, 2007)

<데쓰 프루프>는 죽음의 차를 몰고 다니는 남자 ‘스턴트맨 마이크’와, 그에게 당하는 다섯 명의 여자와, 그를 흠씬 두들겨주는 세 여자 그리고 맹한 여자 한 명에 관한 영화다. 크게 2부로 나뉜 영화에서 앞뒤 여주인공들은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데쓰 프루프>는 두 번째 파트의 여자들이 앞 사람들의 복수를 대행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전작에서 온갖 B급영화의 인용, 베끼기, 패러디를 주무르듯 연출했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솜씨는 여전하다. 그렇지만 타란티노는 이미 재미 본 것을 반복할 인물이 아니다. 세상의 추종자들이 그의 흉내를 계속할 동안, 타란티노는 자기 함정 밖으로 멈추지 않고 질주한다. <데쓰 프루프>는 그 현재진행형이다.

<데쓰 프루프>는 내용물의 80퍼센트 이상이 대화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저수지의 개들> 이후 이제쯤 빙 둘러앉은 인간들의 재잘대는 목소리에 익숙한 사람도 <데쓰 프루프>의 장황한 대화에는 진저리를 칠 만하며, 만약 1부와 2부의 마지막에 위치한 폭발력 100 퍼센트의 명장면이 없다면 <데쓰 프루프>는 저주받은 타란티노 영화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타란티노는 이번에도 영화와 음악에 대고 농담과 진담을 속사포처럼 뿌려댄다. 그런 말에 아직도 현혹된다면 곤란하다. 타란티노의 단정적이고 확신에 찬, 그러나 허빵에 불과한 대사들을 즐기는 수준 이상으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그의 잔꾀에 넘어간 것이다(어떻게 <배니싱 포인트>(1971)와 <더티 매리와 크레이지 래리>(1974)가 미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영화가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데쓰 프루프>의 진정한 가치는 목에 잔뜩 힘을 준 그런 대사들을 제외한, 그러니까 여자와 남자의 가슴과 성기와 발바닥까지 내려온 수다에 있다. 그들 미국인은 심각한 법이라곤 없다. 그들이 나누는 수다의 대부분은 어젯밤에 만난 남자나 여자 이야기 아니면 시시껄렁한 일상사로 채워져 있다. <데쓰 프루프>가 대화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영화들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그간 영화들은 대화를 인간관계를 정의하고 묘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왔으며, 대화의 기술은 종종 교양이나 예술의 한 척도인양 취급받아 왔다(멀리 유럽영화들을 볼 것도 없이, 우디 앨런 영화의 대화 장면을 떠올려 보라). <데쓰 프루프>의 대화는 그 자체로 이야깃거리를 구성하고 그 자체로 오락거리가 된다. 그 속도, 그 리듬, 그 높낮이는 온전히 타란니노의 것이며, 인간관계의 가식은 물론 영화의 허영까지 몽땅 걷어낸 수다는 삼류인생을 다루는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기능한다. <데쓰 프루프>는 수다영화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 예다. <데쓰 프루프>가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타란티노의 수다가 제공하는 즐거움을 놓친 사람일 게다.
 
<데쓰 프루프>는 나머지 15퍼센트를 섹스와 질주, 폭력과 기괴함으로 메운다. 원래 <그라인드하우스>의 한 부분이었던 <데쓰 프루프>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만들어진 B급영화들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다. 도시 변두리의 드라이브인 극장에서 상영되던 소위 ‘그라인드하우스 영화’들처럼, 그 내용이란 게 오로지 자극적일뿐더러, 일부러 열악한 필름 상태를 드러내려는 티가 역력하다. 사전 정보 없이 영화관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스크래치와 먼지, 툭툭 튀는 편집과 되풀이되는 장면, 컬러가 빠진 영상을 보다 못해 영화관에 항의하기에 족할 지경인 것.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영화의 남은 5 퍼센트 - 그러니까 ‘진정한 쾌감’을 위한 장치다. <데쓰 프루프>는 끝나기 십 분 전에도 영화를 마무리할 준비조차 하지 않는다. <데쓰 프루프>는 요란한 질주에 이어 화끈한 한방으로 끝나는 영화다. 그런데 그 한방이 어이없게도 ‘러스 메이어 영화’의 장면들과 흡사하다(차이가 있다면, 러스 메이어의 여자들에 비해 <데쓰 프루프>의 여배우들의 가슴은 소박하다는 정도?). <데쓰 프루프>는 일단 여성들의 신체를 착취하기를 서슴지 않다가 종래엔 그녀들의 무시무시한 복수로 작렬하는 영화다. 그것은 바로 러스 메이어가 만날 해왔던 짓거리 아니겠나. 많은 러스 메이어 영화에서 수박만한 가슴을 보유한 여자들은 거칠고 야비한 남성에 의해 침범당하다 후반에 이를 즘이면 남성들에게 통렬한 복수를 가한다. 성난 여자는 흥분한 고환 밑으로 뜨거운 전구를 들이대는가 하면, 심지어 자지 위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남자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놓기도 한다. 공식적인 경로로 러스 메이어의 영화를 보지 못한 한국 관객은 엉뚱하게 <데쓰 프루프>를 빌려 B급 에로영화의 제왕을 접하게 된 것이다. 단, 알아야 할 사실은, 두 사람 공히 무슨 페미니즘 성향이 있어서 그런 장면과 결말을 만든 건 아니라는 점이다. 메이어의 영화와 <데쓰 프루프>의 결말은 ‘전복을 통한 통렬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1차적인 목적을 둔다. 상대적으로 약해 보였던 여자들이 힘과 악랄함에 있어 도저히 이길 수 없던 남자를 아작낸다는 이야기는, 약자가 강자를 무찌른다는 설정 자체로 환호성을 지르게 한다. 소리는 맘껏 지르되, 행여 페미니즘의 ‘페’ 자를 꺼내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커트 러셀이야 말할 것도 없고 트레이시 톰스, 로자리오 도슨,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등 슬슬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한 배우들의 캐릭터를 전작들과 비교해 보는 맛이 쏠쏠한 작품이다. 특히 로즈 맥고완의 팬이라면 한숨을 내쉴지도(아니, 반대일까?) 그러나 단연 기억해야 할 배우는 조이 벨이다. <킬빌>과 <캣 우먼> 등에서 스턴트우먼으로 죽도록 고생하고도 이름 하나 기억시키지 못했던 그녀는 드디어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절대 잊혀지지 않을 고난이도 연기를 펼친다. 달리는 차 위에서 신기에 가까운 묘기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 그녀의 투혼은 백번의 박수가 모자랄 지경이다.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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