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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랑'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5/15 <프리츠 랑 회고전>에 부쳐 by ibuti
  2. 2007/09/13 프리츠 랑 아메리카 특별전 (2) : 빅 히트 (1953) by ibuti
  3. 2007/09/13 프리츠 랑 아메리카 특별전 (1) : 한번뿐인 삶 (1937) by ibuti
  4. 2007/09/12 프리츠 랑의 아메리카 특별전 by ibuti
  5. 2007/05/19 도박사 마부제 박사 by ibuti
  6. 2007/05/17 사랑과 경멸 by ibuti
Film: Special Column2008/05/15 00:51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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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랑 회고전>


* 아래는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리는 ‘프리츠 랑 회고전’을 맞아 필자가 ‘넥스트 플러스’ 50호 (2008.4.25)에 기고한 글이다.


프리츠 랑의 <달의 여인>(1929)에 등장하는 미치광이 교수는 감독을 닮았다. 지구상의 누구보다 달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잘 아는 교수의 진짜 바람은 달에 묻힌 금을 캐오는 것이다. 초라한 형편 탓에 꿈을 실현시킬 방안이 없는 그는 부유한 제자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프리츠 랑도 그랬다. 당대의 어떤 감독보다 시대와 예술에 대한 비전을 갖췄던 랑은 영화가 대중을 위한 예술이라는 사실 또한 깨달았지만,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돈 그의 인생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랑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대부분 관객의 독일영화에 대한 오해와 거의 일치한다. 걸작 독일영화라고 하면 바이마르 시대의 영화를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관객에게 랑은 표현주의와 <메트로폴리스>의 감독으로만 인식됐으며, 그가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들은 한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유럽에서 할리우드로 건너간 에른스트 루비치와 알프레드 히치콕이 성공을 맛볼 동안 고집 센 망명자 정도로 취급당하던 랑이 <카이에 뒤 시네마>에 의해 재평가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랑 영화의 복원과 회고전이 활발해진 것도 근래의 상황인데, 회고전을 준비하는 측이 개최만큼이나 역점을 둬야하는 중요한 부분은 40여 편의 영화를 특정 시기에 치우치지 않고 소개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5월 9일부터 25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리는 <프리츠 랑 회고전>은 주목할 만하다. 상영작의 수가 무려 19편에 이르거니와, 초기작 <운명>부터 유작 <마부제 박사의 천 개의 눈>에 이르는 넓은 스펙트럼은 랑을 만나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상영작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비전을 띤 작품들로서, 그 배경을 알기 위해선 랑이 통과한 시간과 사건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독일이 패전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데뷔한 랑은 나치가 득세하자 프랑스로 도망가야 했고, 이어 대공황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미국에 건너가선 과거의 영광을 포기해야 했으며, 냉전 시대엔 블랙리스트의 간접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의 작품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신과 싸우는 여인의 이야기인 <운명>은 어쩌면 랑이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우파 스튜디오’의 어마어마한 재원을 총집결해 영웅 신화를 재구성한 <니벨룽겐의 노래>, 노동자들이 노예로 전락한 미래사회를 형상화한 <메트로폴리스>, 그리고 <운명>을 ‘죽음’이란 주제로 묶는다면, 범죄의 대가로 분한 루돌프 클라인 로게가 공포를 통해 사회와 국가를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마부제 박사 1, 2부>와 <스파이>를 묶는 주제는 ‘범죄’다. <엠>으로 연쇄살인마와 현대도시의 기이한 지형도를 그리며 표현주의와 이후의 누아르를 연결한 랑은 할리우드에 입성하면서 미국이 얼마나 암울한 곳인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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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에 범죄 드라마 <한 번뿐인 삶>과 뮤지컬 <당신과 나> 등을 발표한 랑이 1940년대 이후 진입한 곳은 훨씬 비관적이고 폭력적인 세계였다. <사형집행인 또한 죽는다>, <공포의 내각>, <창가의 여인>, <진홍의 거리>는 그 시기의 대표작이다. 1950년대에 냉전시대의 억압된 정서가 반영된 <빅히트>, <블루 가디니아>, <인간의 욕망> 등을 연출한 것을 마지막으로 랑은 미국을 떠나게 된다(이번 회고전에서 같이 소개되는 고전적인 모험 활극 <문플릿>은 다소 예외적인 경우다).

독일로 돌아간 그가 유작으로 남긴 <마부제 박사의 천 개의 눈>은 영화, 미디어, 이미지, 현대사회에 대한 실로 사려 깊은 목소리였다. 다시 처음으로 가서 질문해보자. 랑은 예언자인가, 단순한 목격자인가, 아니면 비주얼에 도통한 기교가인가. 20세기 중반 이후의 영화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감독은 장 뤽 고다르다. 그렇다면 이전의 감독 중 그 위치에 오를 사람은 누구일까? 그 대답은 앞선 질문의 대답에 따라 달라질 터, 회고전에서 각자의 답을 구해보길 바란다.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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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pecial Column2007/09/13 11:13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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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판 포스터


<빅 히트> The Big Heat (1953)

감독 : 프리츠 랑

글렌 포드 (데이브 베니언 역)
글로리아 그레이엄 (데비 마시 역)
조슬린 브란도 (케이티 베니언 역)
리 마빈 (빈스 스톤 역)
알렉산더 스커비 (마이크 라가나 역)

영화평론가 롭 화이트는 “프리츠 랑의 세계는 프란츠 카프카와 레이먼트 챈들러의 그것에 공히 속하며, 랑은 예술가와 대중적인 이야기꾼, 염세주의자와 엔터테이너의 혼합체다”라고 쓴 바 있다. <빅 히트>는 그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뒤, 1930년대 말에 소외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사회 삼부작’을 만들고, 1940년대에는 ‘욕망과 도착’에 몰두하는 등 언제나 범죄와 악을 탐구했던 랑은 1950년대에 이르러 범죄영화의 정점에 도달한 영화를 줄지어 발표했다. <빅 히트>는 그 시기의 대표작이다. 한 편의 우화 같은 랑의 영화가 시간이 흘러도 모던한 느낌을 잃지 않는 건, 랑이 범죄의 시간으로서의 1900년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았기 때문이다. ‘정직하지만 어리석은 형사,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악당, 범죄 집단과 연결된 부패 조직들, 희생당하는 여자의 모습은’ 20세기의 단면에 다름 아니며, 벽, 유리창, 시계, 사진, 계단과 방을 따라 다양한 각도와 속도로 넘나드는 유려한 카메라는 범죄 행위를 양식화하며 범죄의 세기의 실체를 구성한다. <빅 히트>의 형사가 한 개인으로서 부딪히는 범죄 집단, 거대 조직, 관료제도의 막강한 힘이 현재도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주체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강력계 형사 베니언(글렌 포드)은 고지식한 인물이다. 자기 가정과 보통사람이 속한 영역으로 더럽고 추악한 것들이 침입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 그는 범죄자들에게 눈엣가시다. 동료 형사의 자살 사건을 맡은 그는 배후에 거대 범죄 조직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진실에 접근하면 할수록 그의 아내를 포함한 희생자의 수는 늘어만 간다. 그러던 중, 조직 두목의 오른손인 빈스(리 마빈)의 정부 데비(글로리아 그레이엄)와 조우하면서 베니언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데비는 죽음이 드리운 영화에 유일하게 활기찬 에너지를 제공하는 인물인데, 빈스가 뜨거운 커피를 뿌리는 바람에 그녀의 한 쪽 얼굴은 화상으로 일그러진다. 두 부분으로 나뉜 그녀의 얼굴은 경계 양쪽으로 구분지어진 세상을 은유한다. 경계는 명확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보통사람들이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바로 곁에서 범죄와 부패가 들끓고, 살인을 일삼던 악당은 공식적으로 보통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게끔 정치인을 꿈꾼다. 얼굴의 한 쪽을 가린다 해도 그녀의 상처가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도시 또한 추악한 쪽이 일상의 영역을 가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하고 죽는 것처럼, 도시도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부패한 형사의 죽음으로 시작한 <빅 히트>는 부패의 고리를 끝장내는 여자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 결말이 결코 해피엔딩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인간이란 이름의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서야 사회는 질서와 평온과 균형을 되찾은 것이며, 그것조차 일시적인 것일 따름이다. 형사로 복직한 베니언이 사건의 현장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빅 히트>는 끝을 맺는다. 랑이 진단한 20세기의 우울은 21세기에도 여전하지 싶다. (ibuti)

* 베니언의 부인으로 출연한 조슬린 브란도는 말론 브란도의 누나다.

* ‘프리츠 랑 아메리카 특별전’을 맞이해 발간되는 소책자용으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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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pecial Column2007/09/13 11:08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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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뿐인 삶> 홍보용 사진


<한번뿐인 삶> You Only Live Once (1937)

감독 : 프리츠 랑

헨리 폰다 (에디 테일러 역)
실비아 시드니 (조운 그레이엄 테일러 역)
바튼 맥클레인 (스티븐 휘트니 역)
진 딕슨 (보니 그레이엄 역)
윌리엄 가건 (돌란 신부 역)

루이스 부뉴엘은 ‘미친 사랑이란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믿기 힘들 정도의 힘’이라 했다. 필름 누아르에서 ‘도피의 여정에 오른 연인’은 미친 사랑의 대표격이다. 사회로부터 내몰린 두 도망자는 절망적으로 쫓기다 종래엔 죽음을 맞는다. 니콜라스 레이의 <그들은 밤에 산다>가 그렇고,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가 그렇고,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그렇고, 테렌스 맬릭의 <황무지>가 그렇다. <한번뿐인 삶>은 도주하는 연인을 다룬 그들 영화의 원조로 불려 마땅한 작품이다.

미국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 <분노>로 성공을 거둔 프리츠 랑은 비슷한 내용의 <한번뿐인 삶>으로 다시 한번 기쁨을 맛본다. 랑은 ‘누명 쓴 남자와 그를 따르는 여자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표현주의영화와 필름 누아르 사이의 어떤 지점에 머문다. 유럽 시절과 비교하면 영화의 규모가 작아졌고, 불쾌한 꿈과 같았던 세계는 현실의 땅으로 내려오긴 했다. 하지만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랑의 영화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하더라도, 범죄 장면의 폭우와 탈옥 장면의 안개와 그림자는 여전히 주인공과 관객을 옥죄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특히 현금수송차량을 터는 장면은 랑이 범죄의 시각화에 얼마나 뛰어난 감독인지 실감하게 한다. <시민 케인>과 <말타의 매>가 나오기 몇 년 전에 만들어진 <한번뿐인 삶>은 독일 표현주의가 필름 누아르에 끼친 영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다.

세 번의 범죄 경력이 있는 에디와 관선변호사의 비서인 조는 사랑하는 사이다. 에디가 출소한 날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고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에디가 범죄자였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신혼여행지에서 쫓겨나는 것에서 보듯, 두 사람에게 세상은 냉혹하다. 직장에서 쫓겨난 에디는 급기야 현금수송차량 탈취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만다. 아내의 충고에 따라 자수하려다 도리어 붙잡힌 에디에게 사형이 언도된다. 자기 실수를 후회하던 조는 마침내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에디와 운명을 함께할 것임을 다짐한다.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나눈 대화에서 랑은 “내 모든 영화는 운명과 사회적으로 묵인된 부정에 저항하는 착한 사람에 관한 것이다. 투쟁과 저항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다”라고 했다. 기실 랑은 정의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존재라는 걸 알았을 것이며, 그의 영화에서도 투쟁과 저항은 희망 어린 징후를 낳지 못한다. 그럼에도 랑은 사회가 인간에 대해 얼마나 도덕적인지 계속 질문했다. 랑은 범죄의 수사학(修辭學)의 대가지만, 그가 관심을 가진 건 범죄와 사회 시스템 이전에 인간이었다. 랑을 포함한 옛 거장들은 인간을 믿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다. <하나뿐인 삶>을 사회의식이 가득한 멜로드라마 또는 불공정한 형사 체계에 대한 비판으로만 읽을 수 없는 건 그래서다.

<하나뿐인 삶>의 성공과 함께 헨리 폰다는 스타덤에 올랐다. 랑과 배우들의 사이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현장에서 랑과 폰다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말이다(<분노>에 이어 랑과 두 번째로 만난 실비아 시드니는 상대적으로 고통이 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뿐인 삶>에는 폰다가 수많은 영화에서 읊었던 것 중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에디가 “세상이 나를 살인자로 만들었어”라고 말할 때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기란 힘들다. 사실, 음울한 날씨로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던 랑이 이야기의 효과를 위해 주로 이용했던 건 인물의 표정이었다. 억울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폰다의 슬픈 눈동자는 <엠>에서 피터 로레의 불안으로 가득한 눈동자에 버금간다. 이후 존 포드의 <청년 링컨>, <황야의 결투> 등에 출연하며 미국의 이상적인 인물로 분한 폰다는 유럽의 거장들과 작업할 때면 유독 부정적인 인물로 등장하곤 했다. <하나뿐인 삶>은 그 시발점이다. 한 예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오명>에서 폰다가 맡은 역할과 연기는 <하나뿐인 삶>의 변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ibuti)

* '프리츠랑 아메리칸 특별전'을 맞이해 발간되는 소책자용으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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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Garage2007/09/12 23:30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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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랑의 아메리카 특별전>

2007년 9월 13일~21일, 9월 27일~30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
www.cinematheque.seoul.kr)


- 한 번뿐인 삶 (You Only Live Once, 86min)
- 공포의 내각 (Ministry of Fear, 86min)
- 창가의 여인 (The Woman in the Window, 99min)
- 오명의 목장 (Rancho Notorious, 89min)
- 빅 히트 (The Big Heat, 89min)
- 블루 가디니아 (The Blue Gardenia, 90min)
- 인간의 욕망 (Human Desire, 91min)
- 문플릿 (Moonfleet, 87min)
- 도시가 잠든 사이에 (While the City Sleeps, 100min)
- 이유없는 의심 (Beyond a Reasonable Doubt, 80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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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HomeVideo2007/05/19 19:49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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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사 마부제 박사>
 Dr. Mabuse, der Spieler

   프리츠 랑이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연출 제의를 물리치고 <거미단>을 만든 것은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프리츠 랑은 루이 푀이야드의 연작 범죄물과 이국적 취향의 모험물에서 영향을 받은 <거미단>을 만들면서 미래를 감지할 수 있었다. 프리츠 랑은 변장과 최면과 술수에 능한 마부제 박사와 일당의 범죄행각과 몰락을 그린 <도박사 마부제 박사>를 통해 범죄의 세기인 20세기와 범죄 연대기의 대중적 이용을 예언했던 것이다. 유작 <마부제 박사의 천 개의 눈>까지 이어진 '마부제 박사 시리즈'의 시작인 <도박사 마부제 박사>는 독일의 당시 상황을 반영한 표현주의 너머의 세계에 이미 도착했던 작품이다(그래도 첫 번째 표현주의 작품의 연출을 놓친 게 못내 아쉬웠던 것일까? 프리츠 랑은 <도박사 마부제 박사>에서 '표현주의는 주변에 넘쳐나는 수많은 오락거리 중 하나일 뿐'이란 말로 자위했다).

   미국의 이미지사와 영국의 유레카사는 무성영화의 DVD 작업으로 유명한데,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유레카사가 최근 빼어난 수준의 무성영화 DVD를 연이어 출시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의 경우, 유레카판은 독일 필름 보관소와 무르나우 재단이 독일과 해외 상영판의 카메라 네가 필름을 비교해 가면서 복원한 완전판을 수록해놓았다. 두 판본은 편집과 화면구도 등에서 차이를 보이나 기본적인 줄거리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유레카판의 섬세하고 또렷한 영상은 비교를 불허하게 만들며, 이미지판의 고전적이고 우아한 음악에 비해 알소샤 짐머만이 만든 유레카판의 음악 또한 극적 긴장감과 생동감이 넘친다. 그 외 이미지판엔 음성해설이, 유레카판엔 다양한 부가영상이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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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DVD란 물체에 담긴 복원물을 다시 생각해 본다. 필름과 스크린이란 물체 속에서 움직이는 건 존재했던 사람의 동작일 테지만, 누군가에겐 이미 사라진 순간 속에서 힘겹게 숨쉬는 유령의 몸짓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유령의 몸짓을 불멸의 무엇으로 만들고자 하는 복원 담당자에게 혹시 질문하고 싶을지 모른다. '필름 속의 유령이 피곤해 보이지 않아요? 이제 그만 그 자리에서 쉬게 해주세요'라고. 영화 100년의 시간을 지나 복원의 열정에 빠진 시대, 바보 같은 자에게 언뜻 떠오른 생각이었다. (ibuti, 2004.08. 씨네21 465호)

<도박사 마부제 박사> Dr. Mabuse, der Spieler
1922년 / 프리츠 랑 / 1.33:1 스탠다드
270분 / DD 5.1, 2.0 / 독일어 인터타이틀 / 영어 자막 / 유레카비디오(영국)
229분 / DD 2.0 / 영어 인터타이틀 / 이미지엔터테인먼트(미국)

< Comment : 본편의 러닝타임이 긴 영화이기도 했고, 영국판과 미국판의 차이점을 비교해 쓰기 위해 무지 고생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마부제 시리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어서 그런 성의를 다한 것 같다. (ibuti, 2006.04.03. na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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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HomeVideo2007/05/17 16:55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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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경멸> Le Mepris

   크리스티앙 메츠는 '영화는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단순히 현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면 가능한 말일지 모른다. 그런데 장 뤽 고다르는 여러 가지 구조물을 슬쩍 얹어놓아서 설명 이전에 이해부터 어렵다. 고다르의 작품 중 '사랑과 경멸'은 그나마 (비록 그것이 의도되지 않았거나 단지 표면적인 정도에 머무른다고 하더라도) 집중과 이해가 가장 쉽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그 이유는 <사랑과 경멸>의 소재 혹은 주제가 '영화, 그것도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행위'이며, 영화의 제작 환경 자체도 고다르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상업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은 이탈리아의 카를로 폰티였고, 영화의 전반부는 몰락해 가는 시네치타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했다. 영화 속 미국인 제작자 잭 팰런스는 문화라는 말 때문에 골치가 아파지면 수표책을 꺼내고, 독일영화 황금기의 거장 프리츠 랑은 실명으로 출연해 잭 팰런스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꿋꿋이 철학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브레히트가 할리우드에서 처참한 심정으로 지었던, 짧으나 가슴 저미는 시 '할리우드'를 랑이 읊는 설정이 기막히다). 그리고 돈 때문에 각색을 맡은 프랑스 작가 미셀 피콜리와 그의 아름다운 부인 브리짓 바르도가 있다. 프리츠 랑이 서구 문화의 원류인 '오딧세이'를 찍고 있는 가운데, 잭 팔란스와 미셀 피콜리와 브리짓 바르도 사이엔 성과 권력과 계급적 긴장감이 흐른다(어쩌면 <사랑과 경멸>은 '오딧세이'의 영화적 재연인 동시에, 실제 제작자에게 던지는 농담일지 모른다). 결국 누군가는 죽고, 누구는 떠나며, 누구는 남아서 영화를 계속 찍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돌아온 율리시즈는 눈앞에 펼쳐진 짙푸른 바다를 바라본다. 영화를 바꾼 것이 <네 멋대로 해라>였다면, 지금 다시 영화를 생각하게 만드는 건 <사랑과 경멸>이다. 제임스 모나코는 <사랑와 경멸>을 '담론의 양식들' 시기에 놓으면서, 트뤼포가 던진 두 가지 질문 - 영화는 인생보다 더 중요한가? 그리고 여자들은 신비한가 -을 언급했다. <사랑과 경멸>에다 대고 당신도 한번 물어보라. (ibuti, 2004.04. 씨네21 449호)

<경멸> Le Mepris
1963년 / 장 뤽 고다르 / 103분 / 2.35:1 아나모픽 / 프랑스어 2.0 / 한글, 영어 자막 / 다음미디어

< Comment : <사랑과 경멸>은 낱장 발매가 되지 않았고, 다음미디어판 <장 뤽 고다르 작품집>에 <네 멋대로 해라>, <미치광이 피에로>와 함께 수록, 발매됐다.
이 때부터 글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을까? 이 다음부터 마음에 드는 글이 별로 없다. 내 글이 내 글이 아니다. 보면 볼수록 더 어려운 고다르를 함부로 쓰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사랑과 경멸>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정말이다. (ibuti, 2004.11.18. na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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