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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영화관

'장애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7/02 궤도 (김광호, 2007): 바라본다. by ibuti (2)
Film: Comment2008/07/02 02:14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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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 at Gaze.

궤도 (김광호, 2007) ★★★☆

<궤도>는 주인공의 시선에 잡힌 두 발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자는 두 발로 종이를 자르고, 담배를 말고, 그걸 입에 가져간다. 남자에겐 두 팔이 없다. 마을에서 동떨어진 집에 혼자 사는 남자의 삶은 조용하고 고독하다. 낮에는 약초를 뜯고, 밤에는 TV를 보거나 기타로 매번 같은 멜로디를 튕기면서 시간을 보낸다. 남자의 초라한 얼굴엔 세상의 어떤 기쁨도 끼어들지 못할 것 같고, 팔이 없어 펄럭이는 옷소매는 처량하다.

폭풍우가 치던 어느 날 밤, 붉은 옷의 그녀가 처마 밑으로 찾아왔다. 남자는 그녀를 이미 두 번 본 적이 있다. 지친 모습으로 철길을 걷던 그녀를 먼발치에서 보았고, 숲에서 잠든 그녀와 마주치기도 했다. 아파 쓰러진 그녀를 간호한 지 며칠, 남자는 그녀가 누추한 집을 깨끗이 치워놓은 걸 보았다. 그녀는 그렇게 그의 곁에 머물게 되었지만, 그는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죽은 어미가 남긴 트라우마를 느낀다.

첫 장면을 보면서 저렇게 하면서까지 담배를 피워야 되나, 라고 생각했다. 건방진 생각이었다. 두 팔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담배를 피우지 말란 법은 없다. 그의 입이 내뿜는 연기를 보며 힘들게 말아 피운 담배의 맛이 더 좋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두 사람 사이에 은근히 싹튼 감정도 그럴 것이다. 사랑이건, 애정이건, 그냥 이름 모를 감정이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시대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은 어렵게, 어렵게 맺어진다. 귀머거리 여자는 남자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팔이 없는 남자는 수화를 하지 못하지만, 두 사람은 묵묵히 시선을 교환한다.


<궤도>는 거의 모든 장면이 두 사람의 시점쇼트로 이루어진 영화다. 그 남자를 보는 시선은 그녀의 것이고, 그녀를 보는 시선은 그의 것이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상대방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카메라의 시선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시점쇼트로만 연결된 롱테이크의 연속은 멜로드라마에 응당 나오는 흔해빠진 이야기들을 프레임 밖으로 몰아낸다. <궤도>엔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일어나지 않으며, 이야기는 두 사람의 시선이 빚어내는 감정의 교환으로 대체된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기이한 모습의 그에게 관심을 가진 소년 외에는), 그 또한 누군가를 바라볼 일이 없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파출부로 일하는 벙어리 여자에게 그 누가 관심을 가졌겠나. 그녀는 외롭고 지쳤을 것이다. 세상이 싫어 산골에 파묻힌 남자와 세상 속에서 소외됐던 여자가 바라볼 대상을 만난 건 아마도 처음이었을 게다. 영화는 정말로 진득한 방식으로, 서로 바라보고 마음을 나누는 행위가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한다.


그러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라보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가야만 한다. 여자는 웃는다, 그리고 그의 곁에 서기를 갈망한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해방되지 않은 그는 그런 그녀가 부담스럽다. 그녀가 자기 옆자리에 이불을 깔면 저리 치우고, 그녀가 머리를 감겨주려고 하면 터벅터벅 멀리 내뺀다. 그래도 소박한 결말을 기대했을 관객에게 <궤도>의 결말은 너무나 뜻밖이다. 감독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자멸의 드라마를 의도했다고 밝혔지만, 나는 감독의 비정한 결단 앞에서 많이 서글펐다.

북경영화학원에서 촬영을 전공한 김광호는 연변TV방송국에서 22년 동안 촬영과 PD로 근무 중인 인물이며, 그와 연변조선족 스탭들이 힘을 합쳐 완성한 <궤도>는 연변 최초의 독립영화로 기록됐다. 남자 역의 최금호는 실제로 두 팔이 없는 장애인으로서, 김광호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금호의 삶의 이야기>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궤도>의 주연을 맡았다고 한다. 참, 장률이 제작에 참여해서 그런지, <궤도>는 <경계>의 거울처럼 보인다.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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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1 - [Film: Comment] - 경계 (장률, 2006) : 나무를 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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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가별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왠지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로군요.

    2008/07/02 09:48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많이 슬펐습니다. 블록버스터 시즌에 이렇게 느린 영화를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008/07/0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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