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대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이치가와 곤이 2월 13일에 죽었다. 사인은 폐렴으로 밝혀졌다. 이치가와 곤은 작품의 수나 작품의 수준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남겼으나, 이상할 정도로 그에 대한 평가는 다섯 연상인 구로사와의 그늘에 가려졌고 현재에도 대부분의 관객에겐 그렇다. 이치가와 곤의 영화를 몇 줄 문장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의 영화는 말 못하는 꼬마에서부터 올림픽의 현장까지를 포함하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스타일은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했기 때문이다. 일본영화의 다른 거장들과 그를 구분하게 만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영화세계가 어쩌면 그에 대한 부당한 과소평가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물론 일본 바깥의 이야기다).
작년 부천영화제에서 <열흘 밤의 꿈>을 보았다. 그 안에는 이치가와 곤이 연출한 마지막 작품이 들어 있었다. 이치가와 곤이 태어난 이듬해에 나쓰메 소세키가 죽었다는 사실이 각별해서일까, 아니면 이치가와 곤 자신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으리란 걸 예감해서일까. 영화에 참여한 다른 젊은 감독들의 작품 사이에서 이치가와 곤의 것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흑백의 정갈한 화면과 몇 명의 인물이 말 하나 없이 나쓰메 소세키의 수수께끼 같은 주제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치가와 곤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노인의 한가로운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 그가 85살에 발표한 <도라헤이타이>(1999)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69년, 구로사와 아키라, 기노시타 케이스케, 고바야시 마사키 그리고 이치가와 곤은 자기들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독립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러나 하필 그 시작이었던 <도데스카덴>이 절망적인 성적을 거두자 그들은 다음 작품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 때 남겨진 작품이 네 명이 공동으로 쓰고 연출하기로 약속했던 <도라헤이타이>였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1996년에 고바야시 마사키가, 1998년에 구로사와 아키라와 기노시카 케이스케가 세상을 떠난 자리에서 이치가와 곤은 약속의 이행이 더 이상 미뤄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도라헤이타이>는 30년에 걸친 약속이 지켜진 결과였다. 그리고 올해 이치가와 곤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일본영화의 거장들의 시대는 막을 내린 셈이다.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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