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Your Head!
비스티 보이즈 (윤종빈, 2008) ★★☆
나 같은 촌놈이 잘못 발을 들여놨다간 외국에 왔나, 착각하게 되는 곳, 청담동. 승우와 재현은 그 곳이 주무대인 호스트다. 호스트 생활 3개월째인 에이스 승우는 손님으로 왔던 지원을 밖에서 만나면서 애정을 느낀다. 승우의 누나와 동거 중인 재현은 빚 5천만 원을 독촉 받으면서도 장기인 너스레로 하루하루를 넘기며 산다. 호스티스로 일하는 지원을 평범한 연인으로 만들려 애쓰던 승우는 파국을 맞고, ‘공사’로 불리는 한건을 올리려던 재현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때 있는 집안의 아들로 행세했다는 승우는 몰락한 지금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다. 꿈속에서도 떵떵거리며 돈을 써대던 시절이 나오고, 예전 친구를 만나면 괜히 신경질이며, 사귀는 여자에겐 ‘나는 이런 데 있을 사람이 아냐’라고 폼 잡지 못해 안달이다. 재현은 오로지 현실에 충실한 인간이다. 눈앞의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굴욕을 마다하지 않고, 도박에 미쳐 수중의 돈을 전부 쏟아 부으면서도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두 인간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내일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연연하는 승우나 현재 이외엔 관심이 없는 재현이나 싹수가 노란 건 매한가지란 소리다.
윤종빈의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의 주인공인 태정과 승영에 비해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과 승우에겐 이상할 정도로 매력이 없다. 유행 의상을 걸치고 매일 머리손질을 받으며 값비싼 차를 모는 인간들이 어떻게 해서 국방색 군복을 걸친 빡빡머리 남자보다 매력이 없는 걸까? 군대라는 억압된 조직 내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한 현실을 통과해야 하는 태정과 승영은 별다른 장치가 없이도 공감을 얻어내는 게 가능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에 더해 <용서받지 못한 자>의 후반부에 전개되는 특수한 상황도 개연성을 잃지 않았다. 반면 몸 파는 남자들을 별다르게 윤색하지 않고 드러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비스티 보이즈>에선 영화로서의 가치를 찾기 힘들다.
승우와 재현은 비극적 상황에 처하고 이야기는 비극적 결말로 치닫지만 둘은 비극의 근원을 따로 구하지 못할 인물이다. 1970, 80년대에 만들어진 호스티스영화의 주인공들과 두 사람은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인데,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 전자와 자기가 좋아 (혹은 방탕함의 결과) 호스트바로 기어들어온 후자의 차이는 분명하다. 일부 감상적인 면을 부정할 수 없으나 <영자의 전성시대>와 <별들의 고향> 같은 영화의 여주인공이 겪는 고통에선 시대와 현실이 안겨준 무게가 느껴지기라도 했다. <비스티 보이즈>의 호스트는 돈을 밝히는 데 초능력을 발휘하는 한국인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현실을 바꿀 생각과 현실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찾을 길 없는 그들에게서 대체 무엇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호스트는 시대의 희생자도 청춘의 대표자도 아니다. 그러니까 <비스트 보이즈>를 보면서 제발 ‘현실과 수컷의 슬픔’을 읽어내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말길 바란다. 더욱이 <비스티 보이즈>의 후반부엔 (보기 싫었지만) 호스트 세상의 볼거리조차 사라진다. 딴에는 쓰레기형 인간들의 밤 생활을 파헤치느라 용을 쓰던 영화는 거기에서 별 이야깃거리를 찾지 못하자 승우와 재현의 바깥세상 이야기로 돌아선다. 그러나 그들이 현실세계에서 치러야 하는 것들도 지지부진하기는 똑 같다. 이건 뭐, 신파도 아닌 것이, 사이코드라마도 아닌 것이.
잘못 만난 인연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닌 승우와 산더미가 되어 되돌아온 거짓 탓에 끝장으로 몰린 재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다. ‘한.심.한 것.들.’ 이해와 용서 따위는 바라지 않을 그들을 향해, 관객이라고 딱히 애석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다른 어디에다 쓴 말을 한 번 더 쓰자면, 예전 호스티스 영화는 눈물을 뽑아내는 데는, 혹은 대중이 원하는 무엇을 제공하는 데는 성공했었다. 그런데 <비스티 보이즈>는 딱히 뭐하는 영화인지 모르겠다. <비스티 보이즈>는 상업영화로서 자신의 본령에 솔직하지 않았다. 결국 하정우와 윤계상의 연기만 아까울 밖에. 참, 불세출의 뮤지션 '비스티 보이즈'의 이름은 왜 끌고 온 것일까? '비스티 보이즈'라는 이름은 이런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되기엔 너무 아깝다.
또 하나, 영화의 폭력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액션 장르를 제외한 외국영화는 폭력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그것을 가증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크린을 빌려 남자가 여자에게 가하는 폭력에 굳이 익숙해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비스티 보이즈>에는 심할 정도로 폭력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승우와 재현은 시도 때도 없이 여자들의 얼굴과 몸을 가격한다. 뺨을 때리는 것도 모자라 주먹질에다 발길질까지. 꼭 칼질을 한다고 폭력이 아니지 않나. 상대편이 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쉽게 손대는 짓거리를 참고 보기가 괴로웠다. (ibuti)
* <비스티 보이즈>의 시사를 본 날,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첫 번째 극영화 <안녕? 허대짜수짜님!>의 시사에 참석했다. 격한 표현을 쓰자면, 쓰레기들을 보면서 침침해진 눈을 깨끗이 씻을 기회를 준 노동자뉴스제작단에 감사할 따름이다.
관계 글
2008/04/03 - [Film: Garage] - 비스티 보이즈 _ 영화소개, 포스터, 예고편, 스틸
2007/07/21 - [Film: HomeVideo] - 용서받지 못한 자 (윤종빈, 2005)
'Film: Comm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할람 포 (데이비드 맥킨지, 2007) : 소년에서 남자로. (0) | 2008/05/16 |
|---|---|
| 비스티 보이즈 (윤종빈, 2008) : 머리검사 좀 해보지그래? (11) | 2008/04/28 |
| 톡투미 (캐시 레몬스, 2007) : 날 막기가 쉽지 않을걸. (0) | 2008/04/18 |
| 포비든 킹덤 (롭 민코프, 2008) : 옛날 옛적 중국에서 (7) | 2008/04/14 |




글이 어땠나요?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영화 제목부터 미국 유명 힙합 밴드에서 본따 조금 못마땅했는데요,
2008/04/29 11:47(감독의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걸작에서 따왔지만은요..)
게다가 내용도 그저그런 것 같네요..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요즘 안 오셔서 궁금했습니다. 블로그에 가봐도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어서, 행여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했어요.
2008/04/29 22:45'비스티 보이즈'의 팬이라면 이런 영화의 제목으로 쓰여서 짜증날 정도겠더군요. 비추입니다.
아, 별다른 일은 없었고요.
2008/05/01 15:01다만, 정신적 여유가 조금 메말라 있었습니다. ^^;;
이번 달부터는 정말로, 블로그 업데이트에 신경쓰려고 합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오공훈님 블로그의 새글이 어찌나 반갑던지...^^
2008/05/02 12:17저는 전주영화제에 내려가볼까 합니다. 몸이 녹초가 되서 얼마나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앗, 블로그 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
2008/05/02 16:25전주 잘 다녀오세요!~
블로그에서 <안녕? 허대짜수짜님!>을 보신 분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고 고맙습니다. 혹시 저희 영화에 대한 평을 부탁드려도 될른지요? 만약 생각이 있으시면lnp1989@empal.com으로 연락주세요.
2008/04/29 16:30제가 게을러서 아직 리뷰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전주영화제 등의 원고가 많이 밀려서 시간이 없기도 했고요.
2008/04/29 22:46이번 주 중에 원고가 대강 정리되면 <안녕? 허대짜수짜님!>의 리뷰를 쓰도록 할게요.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2008/05/05 03:31하정우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 망했을 듯.
2008/05/15 00:11드물게 악평을 받는 영화네요.
2008/05/12 11:15기회가 오면 볼 수 있을까요?
뭐, 여튼, 들려오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영화가 평균적인 한국영화 내부 검열치에서도 안전할 정도로 전혀 발칙한 구석조차 안보이는 영화가 되버린듯 해요.
함부로 영화를 봐라 마라 말하면 안 되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였어요.
2008/05/15 00:12감독의 인터뷰를 읽어봐도 마음이 안 가는 건 마찬가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