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뿐인 삶> You Only Live Once (1937)
감독 : 프리츠 랑
헨리 폰다 (에디 테일러 역)
실비아 시드니 (조운 그레이엄 테일러 역)
바튼 맥클레인 (스티븐 휘트니 역)
진 딕슨 (보니 그레이엄 역)
윌리엄 가건 (돌란 신부 역)
루이스 부뉴엘은 ‘미친 사랑이란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믿기 힘들 정도의 힘’이라 했다. 필름 누아르에서 ‘도피의 여정에 오른 연인’은 미친 사랑의 대표격이다. 사회로부터 내몰린 두 도망자는 절망적으로 쫓기다 종래엔 죽음을 맞는다. 니콜라스 레이의 <그들은 밤에 산다>가 그렇고,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가 그렇고,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그렇고, 테렌스 맬릭의 <황무지>가 그렇다. <한번뿐인 삶>은 도주하는 연인을 다룬 그들 영화의 원조로 불려 마땅한 작품이다.
미국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 <분노>로 성공을 거둔 프리츠 랑은 비슷한 내용의 <한번뿐인 삶>으로 다시 한번 기쁨을 맛본다. 랑은 ‘누명 쓴 남자와 그를 따르는 여자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표현주의영화와 필름 누아르 사이의 어떤 지점에 머문다. 유럽 시절과 비교하면 영화의 규모가 작아졌고, 불쾌한 꿈과 같았던 세계는 현실의 땅으로 내려오긴 했다. 하지만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랑의 영화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하더라도, 범죄 장면의 폭우와 탈옥 장면의 안개와 그림자는 여전히 주인공과 관객을 옥죄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특히 현금수송차량을 터는 장면은 랑이 범죄의 시각화에 얼마나 뛰어난 감독인지 실감하게 한다. <시민 케인>과 <말타의 매>가 나오기 몇 년 전에 만들어진 <한번뿐인 삶>은 독일 표현주의가 필름 누아르에 끼친 영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다.
세 번의 범죄 경력이 있는 에디와 관선변호사의 비서인 조는 사랑하는 사이다. 에디가 출소한 날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고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에디가 범죄자였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신혼여행지에서 쫓겨나는 것에서 보듯, 두 사람에게 세상은 냉혹하다. 직장에서 쫓겨난 에디는 급기야 현금수송차량 탈취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만다. 아내의 충고에 따라 자수하려다 도리어 붙잡힌 에디에게 사형이 언도된다. 자기 실수를 후회하던 조는 마침내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에디와 운명을 함께할 것임을 다짐한다.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나눈 대화에서 랑은 “내 모든 영화는 운명과 사회적으로 묵인된 부정에 저항하는 착한 사람에 관한 것이다. 투쟁과 저항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다”라고 했다. 기실 랑은 정의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존재라는 걸 알았을 것이며, 그의 영화에서도 투쟁과 저항은 희망 어린 징후를 낳지 못한다. 그럼에도 랑은 사회가 인간에 대해 얼마나 도덕적인지 계속 질문했다. 랑은 범죄의 수사학(修辭學)의 대가지만, 그가 관심을 가진 건 범죄와 사회 시스템 이전에 인간이었다. 랑을 포함한 옛 거장들은 인간을 믿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다. <하나뿐인 삶>을 사회의식이 가득한 멜로드라마 또는 불공정한 형사 체계에 대한 비판으로만 읽을 수 없는 건 그래서다.
<하나뿐인 삶>의 성공과 함께 헨리 폰다는 스타덤에 올랐다. 랑과 배우들의 사이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현장에서 랑과 폰다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말이다(<분노>에 이어 랑과 두 번째로 만난 실비아 시드니는 상대적으로 고통이 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뿐인 삶>에는 폰다가 수많은 영화에서 읊었던 것 중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에디가 “세상이 나를 살인자로 만들었어”라고 말할 때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기란 힘들다. 사실, 음울한 날씨로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던 랑이 이야기의 효과를 위해 주로 이용했던 건 인물의 표정이었다. 억울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폰다의 슬픈 눈동자는 <엠>에서 피터 로레의 불안으로 가득한 눈동자에 버금간다. 이후 존 포드의 <청년 링컨>, <황야의 결투> 등에 출연하며 미국의 이상적인 인물로 분한 폰다는 유럽의 거장들과 작업할 때면 유독 부정적인 인물로 등장하곤 했다. <하나뿐인 삶>은 그 시발점이다. 한 예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오명>에서 폰다가 맡은 역할과 연기는 <하나뿐인 삶>의 변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ibuti)
* '프리츠랑 아메리칸 특별전'을 맞이해 발간되는 소책자용으로 쓴 글이다.
'Film: Special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프리츠 랑 아메리카 특별전 (2) : 빅 히트 (1953) (0) | 2007/09/13 |
|---|---|
| 프리츠 랑 아메리카 특별전 (1) : 한번뿐인 삶 (1937) (0) | 2007/09/13 |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다섯 개의 기억 (0) | 2007/08/23 |
| Scene by Scene (10) : <태양은 외로워>, 마지막 7분 그리고 인간이 부재하는 공간 (0) | 2007/08/04 |




글이 어땠나요?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