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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영화관

Film: Special Column2007/11/27 14:48 Posted by ibuti

2007/11/25 - [Film: Garage] - 스탠리 큐브릭 특별전 (2007.11.26 ~ 12.2)
2007/11/27 - [Film: Special Column] - Scene by Scene (13)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중 ‘인류의 여명’
2007/11/22 - [Film: Special Column] - 스탠리 큐브릭 특별전 : <시계태엽 오렌지>
2007/07/01 - [Film: HomeVideo] - 시계태엽 오렌지 & 아이즈 와이드 셧
2007/05/25 - [Film: HomeVideo]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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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lling> (1956)

<스탠리 큐브릭 특별전>


스탠리 큐브릭을 스승으로 여긴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가 완성될 때마다 영화사가 아닌 큐브릭에게 필름을 보내 확인을 받았다. <풀 메탈 자켓>이 완성될 즈음, 스필버그는 큐브릭에게 영화를 볼 수 있는지 물어봤다. 큐브릭이 안 된다고 대답하자, 스필버그는 “내 영화를 매번 먼저 봐놓고 왜 당신 영화는 미리 보여주지 않느냐”고 따졌다. 큐브릭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큐브릭이고, 당신은 스필버그니까” 스필버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고 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황금기가 지나간 세상에서, 큐브릭은 옛날처럼 메이저 배급사의 권력을 활용한 유일한 감독이었다. <시계태엽 오렌지>을 만들면서 그는 원하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고, 런던 근교에 있는 저택에서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모든 작업을 수행해나갔으며, 심지어 영화의 홍보에까지 꼬치꼬치 관여했다. 지구상의 모든 감독들이 그를 부러워했던 만큼 그는 스스로 특별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큐브릭의 작품을 지탱했던 건 그의 자존심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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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ita>(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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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A Space Odyssey> (1968)

언론에 비친 큐브릭의 모습은 은둔자에 가까웠지만, 그는 영화를 위해 한시도 주변인과의 접촉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는 다방면의 예술인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그들의 지식을 빨아들였고, 새로운 기술이나 기계가 등장하면 재빨리 써보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대중들이 원하는 영화가 어떤 것인지 봐두었다가, 다른 감독들이 만든 준수한 작품들을 가볍게 뛰어넘는 독보적인 작품을 발표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곤 했다. 큐브릭은 생전에 우디 앨런을 존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큐브릭은 매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앨런을 부러워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더딘 제작 스타일로 인해 45년의 활동 기간 중 일반인에게 남긴 작품은 12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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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lockwork Orange>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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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ry Lyndon> (1975)

한국에선 큐브릭의 영화를 스크린으로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 그의 전설을 부추기기도 했다.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다 큐브릭에 관한 유별난 이야기 수백 개쯤 건지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 그의 영화를 스크린으로 접한 감흥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큐브릭이 감독 이전에 사진작가였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언제나 영화기술의 첨단을 탐했던 큐브릭은 알고 있는 모든 영화지식을 필름에 담아 영상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낸 대가였다. 그러니까 큐브릭을 알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길은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며, 큐브릭 영화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스크린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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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ining> (1980)

11월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스탠리 큐브릭 특별전이 열린다. 다섯 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자리인데, 단언컨대 <킬링>, <로리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 <샤이닝>은 큐브릭의 영화 중 시각적 충격이 가장 두드러진 것들이다.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본 뒤 “영화평론가의 말치고는 너무 상투적이지만, 정말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그게 어디 이버트뿐이겠는가, 비행장에서 휘날리는 2백만 달러(<킬링>)와 피터 셀러스의 의뭉한 춤(<로리타>)과 산과 도로 위를 울렁거리듯 날아가는 카메라(<샤이닝>)와 웬디 카를로스의 전자음악(<시계태엽 오렌지>)과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선(<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을 스크린으로 볼 때, 당신은 단순히 움직이는 사진을 보는 게 아니라 스크린 위에서만 가능한 가장 거대하고 흥분되는 경험과 만나게 될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탄다 한들 그것보다 짜릿하진 못할 게다. (ibuti, 넥스트 플러스)

* 글을 쓸 당시에 <배리 린든>이 상영작에 포함된 것을 몰랐다(잡지에도 그대로 나오고 말았다). 그래서 <배리 린든>을 언급하지 못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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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pecial Column2007/11/27 13:37 Posted by ibuti



탠리 큐브릭은 항공기 조종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행기를 몰지 않았다. 그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시속 3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는 달리지 않았는데, 기계를 사랑하고 좋아했던 반면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당연히 장거리 여행을 즐기지 않았던 그는 영화를 만들 때조차 살고 있는 지역 부근에서 많은 부분을 찍기를 원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첫 부분에 해당하는 ‘인류의 여명’도 마찬가지다. 원시적인 풍경을 담아놓은 그 장면을 잘 보면 구름이건 풀이건 움직이는 물체가 없다. 이 부분은 촬영한 것이 아니라, 큐브릭이 조수들을 시켜 아프리카 지역의 사진을 찍게 한 다음 그 중 선택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그가 조수들이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게 놔뒀을 리 없다. 그는 조수들과 끊임없이 통화하며 자신의 주문에 맞춰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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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Garage2007/11/25 11:55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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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 특별전>


2007년 11월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
www.cinematheque.seoul.kr )



* 아래는 홈페이지에서 발췌.

- Introduction : 절대미학을 추구한 완벽주의자이자 새로운 기법과 기술을 탐구한 테크니션이었으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기원을 열며 전 세계 영화애호가들의 열광을 얻었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 늦가을의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옵니다. 큐브릭의 누아르 걸작 <킬링>(1956), 원작에 버금가는 명성을 자랑하는 <로리타>(1962), SF의 고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시계 태엽 오렌지>(1971), 놀라운 빛의 조율과 촬영의 경지를 보여주는 <배리 린든>(1975), 공포물의 대명사 <샤이닝>(1980) 등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작 6편을 상영합니다.

- Special Events :
1. 11월 30일(금) 19시 <샤이닝>(11월 한국감독조합 추천작1) 상영 후 시네토크 : 봉준호(영화감독, <괴물>), 임필성(영화감독, <남극일기>)
2. 12월 1일(토) 15시 30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1월 한국감독조합 추천작2) 상영 후 시네토크 : 김한민(영화감독, <극락도 살인사건>), 이우철(영화감독, <첼로>)
3. 12월 2일(일) 15시 <배리 린든> 상영 후 시네토크 : 김영진(영화평론가),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1928~1999) : 큐브릭은 기자 생활을 하며 영화에 관심을 가져, 기록영화 등으로 경험을 쌓았다. <킬링>(1956)으로 주목받은 후 1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광의 길>(1957)로 자신만의 색채를 굳혔다. <스팔타커스>(1960)는 제작과 주연을 겸한 커크 더글러스의 간섭으로 큐브릭 스스로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영화가 됐지만, 뛰어난 역사 통찰과 서정미를 조화시킨 걸작으로 인정받았다. <스팔타커스> 이후 큐브릭은 할리우드를 떠나 영국에서 자신이 연출 전권을 쥔 영화를 발표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중년 남자가 소녀를 사랑한다는 파격적인 소재를 영화화한 <로리타>(1962)는 나보코프의 원작을 완벽하게 옮겨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는 핵폭발을 블랙코미디로 그려내 냉전 중이었던 발표 시기에 대단한 관심을 끌었고, 야심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는 전통적인 시각적 형식과 구성을 무너뜨린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전체주의 체제와 폭력적인 개인 행동의 폐해를 비교하는 <시계태엽 오렌지>(1971)는 그의 최고 걸작으로 흔히 꼽힌다. 이후 작품들도 큐브릭을 기술 부문에서 가장 앞선 감독으로 평가하게 하는데, <배리 린든>(1975)에서는 촛불 조명을 실험했고, <샤이닝>(1980)에서는 스테디캠을 최초로 구사했다. 묘지에 세워진 호텔에서 겨울휴가를 보내는 소설가 가족의 끔찍한 체험을 통해 미국 역사를 공포영화의 문법으로 비판하는 <샤이닝>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품이다. 베트남전을 다룬 <메탈 자켓>(1987) 이후 오랜 공백을 깨고 큐브릭이 96년 말부터 촬영에 들어간 <아이즈 와이드 셧>은 3년에 가까운 제작기간, 큐브릭의 완벽주의와 비밀주의에 대한 소문,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 커플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의 최종 편집을 눈앞에 둔 1999년 3월7일 큐브릭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 상영작품
킬링 The Killing
  (1956 / 85min / 35mm)
로리타 Lolita  (1962 / 152min / 35mm)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A Space Odyssey  (1968 / 147min / 35mm)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 136min / 35mm)
배리 린든 Barry Lyndon  (1975 / 184min / 35mm)
샤이닝 The Shining  (1980 / 146min / 3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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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pecial Column2007/11/22 01:22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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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스탠리 큐브릭, 1971)

폭력에 관한 한 1971년은 영국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다. 그 때까지 어떤 영화도 보여주지 못한 폭력 장면이 담긴 영국영화 세 편이 내리 개봉되면서 당시 영국의 암울했던 사회분위기와 겹쳐 떠들썩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켄 러셀의 <악령들>과 샘 페킨파의 <어둠의 표적>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예술과 혁명의 시대인 1960년대를 갓 빠져나온 1970년대가 폭력적 현실과 부닥칠 것임을 예언했다. 그런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셋 중 마지막으로 개봉한 <시계태엽 오렌지>는 가장 혹독한 시련에 직면했다. 언론은 폭력과 강간과 마약의 교향악인 <시계태엽 오렌지>가 폭력적인 청년문화를 매력적으로 그렸다는 비판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었고, 결국 영화는 큐브릭이 거주하던 영국에서 25년이 넘도록 상영되지 못했다. 그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건이었다. 앤서니 버지스가 원작소설을 쓰면서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버지스가 <시계태엽 오렌지>를 쓴 배경에 대해선 이런저런 말이 많다. 그의 아내가 강간을 당해 결혼생활이 위기에 처할 뻔한 게 그로 하여금 소설을 쓰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러시아 여행 중에 거리의 폭력배로부터 느낀 위협을 소설로 옮겼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폭력적인 십대를 주인공으로 1960년대의 거리문화와 사회상을 묘사한 <시계태엽 오렌지>에는 폭력을 선동하려는 의사가 절대 없다고, 생전의 버지스는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원작에서 버지스가 역설하고자 하는 주제는 마지막 몇 페이지에 함축되어 있으나, 안타깝게도 1, 2부의 충격과 그 여파는 끝 부분의 중요한 목소리를 종종 묻어버리곤 한다. 소설을 읽지 않았거나,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사람들이 버지스와 큐브릭을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인간으로 비판하는 건, 많은 부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큐브릭에게 원작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한 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각본을 담당했던 테리 서던이었다. 큐브릭은 소설을 읽었으나 영화화가 별로 내키진 않았다. 알다시피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알렉스 일당이 쓰는 은어는 ‘내드샛’이라는 것으로, 버지스가 러시아어와 런던의 속어 등을 직접 섞어 만든 그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큐브릭은 대중도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 내다봤다. 큐브릭이 혁신적이고 대담한 시도를 서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는 점은 그에겐 대중과 평단을 주의 깊게 의식하는 쇼맨 성향 또한 강했다는 사실이다. 관객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보여주려 하지 않았고, 관객이 놀라는 것도 바라지 않았던 큐브릭이 <시계태엽 오렌지>의 작업을 거절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큐브릭이 결국 <시계태엽 오렌지>를 연출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에 그가 느꼈을 작가로서의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짧은 줄거리 안에 변화무쌍한 이야기와 화려한 액션이 결합된 작품이 필요했던 큐브릭에게 <시계태엽 오렌지>는 둘도 없는 선택이었다. 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으나,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들로 인해 MGM사의 경영진이 교체되는 바람에 큐브릭은 여러 영화사에 부정적인 인물로 낙인 찍혔다. 게다가 MGM사가 그의 필생의 프로젝트인 <나폴레옹>마저 거절하자, 큐브릭은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거의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를 찍어(시대와 공간을 짐작하기 힘든 <시계태엽 오렌지>의 많은 부분은 실제 런던 근교에서 촬영됐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길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큐브릭은 사악하면서도 매력적인 주인공 알렉스가 셰익스피어의 창조물인 리처드 3세에 버금가는 최고의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배우였다. 큐브릭은 알렉스 역할을 맡을 배우가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시계태엽 오렌지>를 시작할 마음이 없었다. 어느 날 운명처럼 린제이 앤더스의 <만약에...>를 보던 큐브릭은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말콤 맥도웰이란 배우를 발견했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포획물을 거두기 위해 직접 전화를 걸었다. 큐브릭이 <시계태엽 오렌지>를 연출한 세 번째 이유는 작가로서의 자기 위치를 재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다 건너 자신이 살았던 미국에서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 향후 ‘뉴 아메리칸 시네마’란 이름으로 불릴 작품들을 만들어내자, 큐브릭은 혁명을 이끄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간 만들어오던 장르영화가 아닌, 전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젊은 녀석들이 만들고 있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을 만들겠다는 욕망을 품었다. 어쩌면 <시계태엽 오렌지>는 큐브릭이 만든 가장 순수한 예술영화일지도 모른다. 큐브릭이 힘을 쏟았던 장르영화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컬트영화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시계태엽 오렌지>는 그 탄생에서부터 각별한 운명을 타고났던 것이다.


버지스가 각색을 맡아주길 바랐던 큐브릭은 곧 자기가 각본을 더 잘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해 비교적 빨리 대본을 완성했다. 그런데 정작 영화 촬영 중에 더 많이 사용하고 들여다본 건 원작이었다. 배우들도 두꺼운 대본이 아닌 얇은 소설을 들고 다녔고, 큐브릭은 촬영할 때마다 소설의 페이지를 먼저 소개한 다음에 어떻게 찍을지 의논했다. 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고, 그래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이제 어떻게 될까, 응?’이다. 아마 큐브릭도 현장에서 그 말을 흔히 사용했지 싶다. 그 결과, 영화의 엔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은 원작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알렉스는 4인조로 구성된 십대 문제아 패거리를 이끄는 두목이다. 그들은 가벼운 약에 취한 채, 법과 질서의 허약한 틈을 타 폭력을 휘두르고 성을 탐닉하며 돈을 갈취하는 악행을 거침없이 저지른다. 그러나 믿었던 패거리의 배반으로 알렉스는 범행을 저지르던 현장에서 경찰에 잡히고, 교도소 안에서 몇 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빨리 자유의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죄수를 강제로 개조하는 프로그램인 ‘루도비코 요법’의 실험대상으로 자원한 알렉스는 뛰어난 성과를 보여 마침내 풀려난다. 하지만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권력이 심어놓은 통제 프로그램에 따라 반응하는 노예로 전락해버린 알렉스는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고자 자살을 감행한다. 물론 그의 자살은 실패로 끝나는데, 그가 겪은 비극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알렉스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기회를 얻는다. 영화의 논란은 이어지는 결말이 소설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에 대한 수많은 분분한 의견 중에는, 끝 부분이 삭제되어 발행된 미국판 소설을 큐브릭이 읽은 탓에 영화의 엉뚱한 결말이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소설과 영화의 상이한 탄생배경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직접 경험한 비극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 버지스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 십대 소년들이 언젠가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랄 것을 기대한 게 당연했고, 또 그런 내용으로 소설을 끝냈다. 소설의 시작부분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는 15세 소년이었던 알렉스는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성인으로 진입하는 나이인 18세 남자로 자라 있다. 소설의 주인공 알렉스는 그렇게 고백한다. ‘난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됐어. 형제들, 바로 철이 든다는 것이겠지. (중략) 이 이야기를 끝내는 지금 난 더 이상 어리지 않아. 알렉스는 어른이 되었단 말이야. 그렇고 말고.’ 한데, 영화의 주인공 알렉스는 끝에서 “난 확실히 치료됐다”라고 말하면서도 (소설의 알렉스와 달리) 그 동안 즐겨왔던 쾌락적 삶을 포기할 마음이라곤 없어 보인다. 큐브릭은 폭력을 선동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감정, 인간의 의지, 인간의 구원’ 같은 버지스의 주제에 심각하게 관심을 두는 척하지도 않았다. 언뜻 보기에 고리타분한 도덕률과 소시민적 삶을 옹호하는 듯한 소설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을 리 없는 큐브릭은 영화가 차가운 블랙 유머로 끝나도록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현대영화에 더 관심을 기울인 큐브릭이었으니, <시계태엽 오렌지>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누가 뭐래도 <시계태엽 오렌지>는 큐브릭식의 <모던 타임즈>다.


영화의 개봉 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시계태엽 오렌지>가 전설이 되는 데 오히려 일조했으며, 그것은 몇몇 평자들로 하여금 <시계태엽 오렌지>가 과대평가되었다고 말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응에 가장 먼저 당황한 건 물론 큐브릭이었다. ‘수다스럽고 지겹기만 한 영화’라는 로저 이버트의 혹평은 차라리 평범한 편이었는데, 급기야 프레드 M. 헤싱거(F
red M. Hechinger)가 뉴욕타임즈에 쓴 글에서 ‘파시즘의 기운’을 운운하자 발 빠른 쇼맨 큐브릭은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다. 그는 뉴욕타임즈의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의 영화가 오독되고 있음을 구구절절 밝혔고, 사이트 앤 사운드지와의 인터뷰에선 ‘<시계태엽 오렌지>와 사회적으로 위협적인 폭력 사이엔 연결점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적인 파장은 갈수록 커져갔고, 영화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큐브릭조차 이로 인해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재판정에 선 모든 십대 문제아들이 손쉽게 <시계태엽 오렌지>를 들먹이는가 하면, 어떤 남자가 강간을 하던 도중 (알렉스가 그랬듯이) <싱잉 인 더 레인>을 불렀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받은 큐브릭이 배급을 맡은 워너사에 그 사실을 알린 뒤, 워너는 큐브릭과 가족에게 영국에서 더 이상 <시계태엽 오렌지>를 상영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큐브릭이 죽을 때까지 지켜졌다. 버지스도 TV에 나와 끝없이 공격받고 있던 큐브릭을 옹호하긴 했으나, 내심 소설의 엔딩을 바꾼 큐브릭을 용서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버지스는 자기가 쓴 소설이 큐브릭 영화의 원작으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했다. 소설이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십대 소년의 이야기라면, 영화는 자유의지에 대한 찬양으로 읽힌다. 소설과 영화 둘 다 인간이 시스템의 어릿광대인 기계장치로 사는 걸 바라지는 않았지만, 소설은 오렌지처럼 밝고 신선하고 활기찬 유기체를, 영화는 통통 튀는 말썽쟁이 오렌지를 원했던 것 같다. (ibuti)

* '스탠리 큐브릭 회고전' (서울아트시네마, 2007.11.26~12.2)을 맞아 발간되는 소책자용으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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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HomeVideo2007/07/01 02:28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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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



   개인선과 쾌락을 따를 때는 겉으로 내세울 구실을 찾기 마련이다. 앤서니 버지스가 쓴 <시계태엽 오렌지>의 1?2?3부는 ‘이제 어떻게 될까?’란 물음으로 시작한다. 동의나 호기심을 구하는 듯한 이 말은, 그러나 핑계다. 비록 폭력과 광기로 물든 것이라 할지라도 자유의지로 충만한 소년 알렉스는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작품 <꿈 이야기>의 프리돌린(영화에서는 빌)도 질투에 사로잡힌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나 이 또한 변명이다. 그는 가면 아래에 숨겨진 자신의 모습을 쫓아 욕망의 오딧세이를 써나간다. 그리고 두 사람의 행위가 한 여자의 죽음이란 결과를 각각 초래하면서, 국가권력은 소년의 의지를 통제하고, 남자는 알 수 없는 권력에 의해 욕망의 세계로의 진입을 저지 당한다. 개인선, 쾌락, 자유의지는 누가 허용하는 것이며, 어디까지 제한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전후에 태어난 1960년대의 비트족 혹은 미래의 악동을 상징하는 알렉스 패거리가 덜 이성적이어서 그들의 자유는 억제되어야 하고,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혹은 현대 뉴욕의 상류층 남자는 상대적으로 지적인 인물이어서 그의 신념과 욕구는 보장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두 영화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곡예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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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시계태엽 오렌지>는 자유의지에 대한 제도의 억압을 비판하면서도 일정 부분 현실적인 삶을 받아들이는 알렉스를 통해 도덕적 책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알렉스는 끝까지 ‘내가 가는 곳은 나 혼자만의 길이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즈 와이드 셧>도 에로스의 세계에서 집으로 돌아온 빌이 가정의 윤리를 다시 수용하면서 끝을 맺고 있으나, 빌 부부는 둘 사이에 ‘영원’이란 말을 쓰기를 주저한다. 공리주의자였는지 이상주의자였는지 모르겠지만 스탠리 큐브릭은 영국인 냄새를 풍기는 미국인이다.

   <시계태엽 오렌지>와 <아이즈 와이드 셧> DVD의 출시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될 만하다. <휴머니티>, <팻 걸> 같은 영화의 DVD가 선보인 지금, 그 의미를 단순히 신체적 노출이 과다한 영화의 출시로 국한할 수만은 없다. 특히 <시계태엽 오렌지>의 경우 한 나라의 심의 기준과 윤리적 허용치의 잣대가 되는 작품인 만큼 30여년만의 공식 상륙이 주는 감회가 크다. 영화의 명성에 비해 두 DVD의 부록이 부족하다 해도 <시계태엽 오렌지> DVD의 예고편과 <아이즈 와이드 셧> DVD의 인터뷰는 A급이다. 큐브릭이 직접 만든 예고편은 신선함이 영화에 못지 않으며, 거장의 죽음에 눈시울을 적시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을 보면서 그를 다시 그리워하게 된다. (ibuti, 2005.8. 씨네21 517호)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년 / 스탠리 큐브릭 / 137분 / 1.66:1 비아나모픽 / DD 5.1 영어 / 한글, 영어 자막 / 워너
< 화질 ★★★☆  음질 ★★★  부록 ☆ >

<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
1999년 / 스탠리 큐브릭 / 159분 / 1.33:1 스탠더드 / DD 5.1 영어 / 한글, 영어 자막 / 워너
< 화질 ★★★☆  음질 ★★★☆  부록 ★☆ >

< Comment : 국내 개봉 때 <아이즈 와이드 셧>은 와이드스크린 포맷으로 상영됐다. 어느 게 맞는지는 큐브릭만 아는 사실일 게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DVD 개봉에 맞춰 워너에서 특별상영 자리를 마련해줘서 그 때 스크린으로 처음 봤다. 필름을 한 권 보관하고 싶을 정도였다. 홈비디오로 수십 번 영화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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