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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영화관

Film: Comment2008/04/05 13:06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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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pirators of Pleasure.


킬위드미 Untraceable (그레고리 호블릿, 2007) ★★★


제니퍼 마시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 소재 FBI 지부에서 사이버 범죄를 담당하는 베테랑 요원이다. 동료로부터 ‘killwithme.com' 사이트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은 그녀는 접속한 순간 죽어가는 고양이의 모습이 생중계되는 걸 보게 된다. 심상찮은 낌새를 알아차린 그녀의 예상대로 본모습을 드러낸 사이트는 심각한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범인이 선택한 다음 대상은 중년의 남자였고, 접속자의 수가 증가할수록 죽음은 빨리 진행되며, IP주소를 계속 바꿔 기생하는 복제사이트를 추적하기란 불가능하다. 속수무책인 수사팀을 비웃는 듯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가운데, 살인을 목격하려는 사이트 방문자의 수는 폭주 일로다.


얼마 전 개봉돼 적잖은 반응을 불러일으킨 <클로버필드>처럼 <킬위드미>는 요즘 유행하는 문화인 UCC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현장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사이트는 인터넷 초기부터 있어왔으나, <킬위드미>의 범인은 사이트로의 제한된 유입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노출과 접근을 꾀한다. 그의 치밀한 범행 준비, 대담한 살인행각, 숨겨진 의도가 관객의 긴장을 유발시키는 건 당연하다. 한데, 다행스럽게도 <킬 위드 미>는 사이버 범죄를 쉬운 흥밋거리로 취급하지 않는다.


포틀랜드 특유의 추적대는 비가 영화의 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 외에, <킬위드미>는 스릴러로서 특별한 구석이 없다. 몇 번의 사건이 일어나고, 중요 인물 중 누군가 희생되고, 결국 주인공이 위기에 처한다는 전개방식엔 새로울 게 없으며, 범인을 찾아내고 전모를 드러내는 방식도 영화 속 첨단 범죄에 비하면 구식에 가깝다. 그럼에도 <킬위드미>는 재미있다. <킬위드미>처럼 현실문제와 결부된 영화는 관객을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을 영화 바깥의 현실로부터 구할 때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 현명하게도 그것을 간파한 <킬위드미>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킬위드미>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목격하는 심정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희생자 캐릭터가 비참하게 죽어서? 아니, 그것은 영화의 범죄가 반영하는 현실과 그러한 범죄가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 때문이다. 영화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만큼이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는 ‘킬위드미’ 사이트에 접속해 살인의 현장을 즐기는 네티즌들과 그들이 살인중계를 보면서 남긴 추악한 댓글들이다(영화는 그들을 ‘범죄의 공모자’로 규정한다). 살인이 벌어지는데 설마 그러겠냐고? 글쎄.

현대문명의 몰락이 감지되는 가장 큰 징후는 밀폐된 혹은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증가 추세다. 자의든 타의든 그들과 다른 사람간의 접촉은 점차 줄어들고, 그들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시간을 소비한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그들에겐 포털 사이트에서 메인으로 뜨는 쓰레기 같은 뉴스가 양식이며, 게임 같은 놀이만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인 것이다. 인간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는 그들에게 인간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호기심은 목숨이 아홉 개인 고양이도 죽인다고 했다. 인간을 호기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존재다. 그들에게 인간은 언제든지 사고 팔 수 있는, 그리고 폐기 가능한 재화와 다름없다. 게다가 호기심의 충족으로 쾌락, 쾌감을 얻음으로써 시간을 때우는 자는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기 마련이며, 호기심에 목마른 사람에게 궁극의 자극은 가짜 현실이 아닌 실재하는 사건들이다. 그들에게 ‘킬위드미’ 사이트가 제시된다면 영화와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삶의 균형이 부서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 자체가 내겐 최고의 공포다. (ibuti)


* 연출을 맡은 그레고리 호블릿의 아버지는 FBI에서 26년간 활동한 요원이었다고 한다. 그의 영화에서 수사관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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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oldingu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이안레인은 참 여성스러운 얼굴이네요. 나이들어서 빵빵하게 바람넣지 않아도 아름다우실 듯.

    2008/04/25 10:22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20년 전의 다이안 레인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요즘 얼굴을 보며 솔직히 안타까웠답니다. 그리고 <점퍼>에선 얼굴에 바람을 좀 넣으신 듯... 제가 괜한 이야기를 했나요?

      2008/04/28 10:43
  2. BlogIcon holdingu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년전의 다이안레인이라...그 스트리트오브파이어란 영화에 나오셨었죠? 보긴했는데 남자 주인공의 느끼함만 기억나요^^.

    2008/04/29 08:02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이안 레인은 어릴 때부터 성숙한 얼굴이었어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빛났던 배우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당시 반짝했던 수많은 청춘배우들처럼 그녀도 한동안 고전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못 봐서 그런지, 요즘 몇 편의 영화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면서 반갑더군요.

      2008/04/29 22:42

Film: Comment2008/03/19 11:04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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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s & Lies


어웨이크  Awake (조비 해롤드, 2007) ★★★


<어웨이크>는 ‘마취 중 각성’으로 깨어난 남자의 이야기다. 퍼뜩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수술 중에 깨어난 아이의 복수극인, 이규만의 <리턴>이다. 결과를 보면, 그럴싸한 소재를 가지고 허탕을 친 <리턴>에 비해 <어웨이크>는 같은 소재를 아주 경제적으로 사용한 편이다. 여기엔 궁색한 잔머리도, 억지로 끼워 맞춘 이야기도 없다. 상영시간마저 깔끔하다. 84분.


영화는 수술 중에 죽은 환자와 그를 수술한 의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수술을 받던 주인공이 죽었으니 우리는 영화의 결말을 알아버린 셈이다. 대담한 도입부에 이어 죽은 남자의 하루가 30분 동안 전개된다. 뉴욕 소재 투자회사의 대표로서 시장을 주무르는 22살 청년 클레이.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은 그에겐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와 어머니의 비서는 교제 중이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두려운 탓에 그 관계는 비밀스럽다. 운명의 날, 그는 어머니에게 둘의 관계를 밝힌 뒤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런데 하필 그날 밤에 찾던 심장이 구해지고, 클레이는 수술대에 오른다.


자, 여기서부터 더 이상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요즘 영화들에서 익숙한 반전상황? 물론 <어웨이크>에도 나온다. 그래야 재미있을 테니까. 단, 그게 혀를 찰 정도로 기발한 유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웨이크>는 재미있다. <어웨이크>는 대단하고 독창적인 이야깃거리를 준비하는 대신, 관객들의 뻔한 짐작들을 살짝 살짝 비켜나며 잔재미를 추구하고자 한다. 신인감독은 자기 능력에 맞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그 결과 예쁜 얼굴의 남녀 주인공은 어깨의 힘을 빼고 가볍게 영화에 임했다.

스릴러를 표방한 <어웨이크>의 감독 조비 해롤드는 드라마에도 재능이 있음을 보여준다. 적어도 <어웨이크>만 보면 그렇다. 마취 상태로 들어가지 못한 주인공은 몸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을 다른 곳으로 집중하려 애쓴다(조그만 고통에도 민감한 나로선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일까 싶다만). 그리고 그가 몸과 영혼이 분리된, 혹은 꿈을 꾸는 듯한 상태에서 사건을 정리하고 진실을 깨달을 동안, 병실 밖에서는 또 다른 드라마가 벌어지고, 오랜 비밀이 벗겨진다. <어웨이크>는 숨겨진 비밀과 못된 거짓말에 관한 영화다.

<어웨이크>가 싸구려 스릴러로 전락하지 않은 건, 수술과 실수와 복수라는 간단한 공식을 깨고 드라마와 그럴싸하게 결합한 덕분이다. 물론 진부한 결말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도 있겠고, 스릴러의 급박한 상황을 기대한 사람은 함량미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정도면 대중영화로서 성공적이라고 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어웨이크>는 히치콕을 존경하는 청년이 만든 귀여운 <식스 센스> 같다. (ibuti)

* 어리석은 말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수술중 각성이나 마취중 각성을 이해할 수 없다. 온몸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굳어 있는 상태라면 몸의 신경조직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경조직을 통해 통증이 뇌로 전달되지 않을 텐데, 단지 정신이 깨어 있다고 해서 통증을 느낄 수는 없지 않을까? 실례로, 얼마 전 전신마취 도중 깨어난 지인이 있다. 그는 의사선생을 보면서도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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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흠뭘모르시는게 있네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어웨이크같은 사건은 미국에서 몇번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일단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건 거의 의사의 실수인거죠
    일단 의사의 마취제 오발로 나는 사건이 대부분인데요
    마취제는 일단 의식을 잠제우는 마취제와 인체에 마취시키는 마취제
    통증을 낮추는 마취제 이렇게 3 가지로 나뉩니다 어웨이크같은 사건은
    이마취제중하나인 통증을 없에는 마취제의 주입이 안된경우에서 나타난사건이죠
    일단 이일은 미국에서도 몇번일어난 사건이고 한국에서도 몇번일어난걸로 알고 있습니다

    2008/03/19 15:06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몰랐던 건 아니구요, <어웨이크>의 시사회에서 뿌린 보도자료에도 말씀하신 사례가 적혀 있었습니다. 한 해 21백만 건의 전신마취 수술 중 3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의식이 깨어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리턴>의 보도자료에도 그 비슷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었구요. 다만 그것까지 일일이 적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글에서는 뺐습니다.

      제가 말미에 쓴 글의 요지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수술중 각성이나 마취중 각성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님의 글을 읽어보니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008/03/19 16:47
  2. 부정승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상평 잘 봤습니다.
    재밌게 본 영화인데 인터넷엔 다들 혹평이 난무해서 씁쓸하네요.
    리턴은 아직 안 봤지만 어웨이크가 복수극에 촛점을 맞춘 영화는 아니니
    비교해보는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2008/04/23 23:09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곳에선 혹평이 많았나요? 저는 재미있게 본 편이라.
      같은 소재를 사용한 <리턴>은 별로였어요. 한국 스릴러 특유의 쥐어짜는 분위기가 너무 강해서...

      2008/04/28 10:38

Film: Comment2008/03/08 21:34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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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Touch the Dead Man's Body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에단 코엔, 조엘 코엔, 2007) ★★★★★


‘서부는 더 이상 이상향이 아니며, 서부의 사나이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라는 대사는 오래 전 ‘수정주의 서부영화’들이 질리도록 했던 말이다. 수정주의 서부영화들마저 떠나버린 자리에서 서부영화를 완전히 끝장낸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다. 서부영화의 아이콘이었던 이스트우드는 ‘서부의 영웅은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서부영화는 죽은 듯했다.

서부영화를 새로 시작한 사람은 이른바 작가로 불리는 일군의 감독들이다(그 사이에 나온 몇 편의 복고풍 서부영화들은 잊도록 하자). 솔직히 말해, 그들의 영화를 처음 접할 때에는 그것이 새로운 웨스턴의 시작인줄 몰랐다. 짐 자무시의 <데드 맨>(1995), 존 세일즈의 <론 스타>(1996), 스티븐 프리어즈의 <하이로 컨트리>(1998), 빌리 밥 손튼의 <올 더 프리티 호스>(이 영화의 사라진 완전판을 볼 수 있다면 별 다섯 개를 주겠다고 쓴 적이 있다, 2000), 이안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 그리고 토미 리 존스의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매장>(2005)을 보면서, 나는 각각의 작품에 대해서만 평가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


수정주의 서부영화의 적자인 이들 서부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통적인 서부영화의 신화나 전설이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 자리를 내주고, 이상화된 서부 대신 죄를 잉태한 공간이 얼굴을 드러낸 점은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내가 놓친 중요한 사실은, 기존의 서부영화가 만들어진 양식에 맞춰 주인공과 그의 환경을 구축했던 것과 반대로, 이들 영화의 주인공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성찰하며, 그들의 눈으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바깥세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며 비판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서부의 옛 공간으로의 여정을 재개하고(<데드 맨>,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매장>), 서부를 심판하고(<론 스타>), 현대사회에서 카우보이의 존재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올 더 프리티 호스>). ‘철학적 웨스턴’이라 이름 붙일 만한 웨스턴이 그렇게 탄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말하기 전에 서부영화에 대해 왜 이리 지루한 말을 이어가느냐고? 서부영화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원형이다. 서부의 공간은 할리우드영화는 물론 미국 역사의 메타포로 기능하고, 서부영화처럼 진화의 전 과정을 온전하게 거치며 마감한 장르는 없다. 그리고 지루했던 1980, 90년대를 지나 할리우드의 새 물결을 이끌어내고 있는 중요한 영화들이 다름 아닌 그 서부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시점에서 서부영화부터 거론하지 않을 수는 없다. 2007년에 미국에서 나온 가장 인상적인 영화 몇 편은 서부의 공간을 탐구한 것들인데, 그들 작품은 위에서 말한 ‘철학적 웨스턴’의 영향 아래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어쩌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보다 더 중요한 영화인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그렇고,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가 그렇고, 앤드류 도미니크의 <겁쟁이 로버트 포드에 의한 제시 제임스의 암살>이 그렇다. 단, 정작 서부영화를 표방하면서도 위의 영화들에 비해 확실히 뒤떨어지는 <3:10 투 유마>는 제외하겠다.


에단 코엔과 조엘 코엔에게 서부의 공간은 낯설지 않다. 그들은 데뷔작 <분노의 저격자>에서 이미 텍사스를 찾은 바 있다. 20대 후반의 그들이 거기서 만들었던 새로운 영화는 미국 장르영화의 전통을 뒤튼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 텍사스에서 그들은, 놀랍게도, 그들이 그토록 반항했던 장르영화(그 중에서도 서부영화)를 불러내고 먼지를 털고 사유한다. 한데, 여기서 의미심장한 건 공간적 배경뿐만이 아니다.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찾아간 1980년이란 시간은 영화가 텍사스로 돌아간 것만큼 중요한 포인트다.

그들에게 1980년은 단순히 현재로부터 27년 전이 아니라, 그들이 영화를 시작했던 지점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그들이 <분노의 저격자>라는 전대미문의 작품으로 데뷔한 해는 1984년이다. 예리한 관객이라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분노의 저격자>의 시작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게다. 두 영화의 도입부는 공히 한 남자의 긴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그 화자는 이후 사건의 중심에 놓일 주인공이 아닌, 사건 바깥에서 사건에 개입하는 아웃사이더다. <분노의 저격자>에서 그는 욕심 많은 사립탐정이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그는 살인마를 뒤쫓는 보안관이다. 코언 형제는 판이한 성향의 두 사람을 빌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분노의 저격자>에서 ‘난 불만을 가진 채로 살겠어. 여기 텍사스에서 너는 너 혼자만으로 존재해’라고 말하는 탐정은 돈에 대한 욕심에 살인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젊은 주인공들에게 사랑의 도피와 희망을 안겨줄 수 있었을 그는 현실의 이익에 눈이 멀어 악의 길을 걷다 죽음에 처한다. 그에겐 그 자신 외에 아무도 없으며, 세상의 일과 세상의 사람들은 그에게 의미를 주지 못한다. 반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은퇴를 앞둔 보안관은 ‘두려운 건 그게 아니야. 이 일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거지’라고 독백한다. 그에게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곳이고, 그는 살인을 저지르며 다니는 악의 화신이 두렵다. 하지만 그는 살인마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을 살리고 싶은 남자다. 데뷔 이후 20여년이 지난 코엔 형제는 장르와 인물과 죽음과 다시 게임을 벌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들은 그들이 20년 전에 창조했던 인물을 버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 코맥 매카시(매카시는 위에 언급한 <올 더 프리티 호스>의 원작자이기도 하다)가  만들어낸 인물과 동화한다. 두 형제는 보안관이 소설 속에서 말한 것처럼 시대를 근심한다.


무례를 용납하게 될 때 모든 게 시작됩니다. 더 이상 존칭과 경어를 듣지 못하는 순간 눈앞에 종말이 보이는 거지요. 이런 풍조는 모든 계층에 스며들었어요.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중에서.

에단 코엔과 조엘 코언이 나이가 들면서 노인 편을 들게 된 걸까. 아니, 그렇다기보다 세상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한 곳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보는 게 맞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이야기 면에서 형제의 최고 걸작 <파고>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파고>는 악으로 둘러싸인 외부세상을 모호한 관점에서 파악했다. <파고>의 주제가 일부분 도덕적인 관점을 취한 게 사실이나, 두 형제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단정 짓기 힘든 기이한 곳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영화를 마무리했다. <파고>의 여자 경찰관은 뱃속에 아이를 두었으면서도 사건에 임할 때는 묘할 정도로 두려움을 보이지 않은 인물이다. 그녀에 비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나이 든 보안관은 미국이 글러먹은 곳임을, 미국이 옛 선조가 물려주고자 했던 땅이 되지 못했음을, 그리고 미래에도 결코 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그는 자신이 해결해야 할 사건과 잡아야 할 인물을 놓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에게 이번 사건은 너무 버겁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문제를 척척 해결할 영웅이 없으며, 설령 그런 인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웅 혼자 해결하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지긋지긋한 곳으로 바뀐 지 오래다.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매장>에서 죽은 자를 쉴 곳으로 데려가는 인물을 연기한 토미 리 존스가 이번에 맡은 역할은, 죽이려는 자에게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자를 구하려는 보안관이다. 빠르지 않은 발걸음, 두뇌보다 직감을 따른 수사가 그의 특징인데, 그는 자신이 결국 보게 될 결과를 미리 아는 듯하다. 그의 노력과 상관없이 누군가는 죽을 것이고, 그는 다른 누군가를 잡지 못할 것이다. 보안관은 자신의 안간힘이 세상의 한 조각도 구원하지 못할 거란 사실을 경험을 통해 터득한 인물이다.


나는 부관들에게 고칠 수 없는 일은 고치고 나머지는 그냥 놔두라고 한 번 이상 말했다. 손을 놓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그건 단지 짜증거리에 불과하다.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중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훤히 아는 자는 세상이 돌아가는 형세가 염려스럽기 마련이다. 세상을 들쑤시고 다니기엔,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 늙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말씀’이다. 그들은 그들이 얻은 깨달음을 젊은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한다. 그 지혜를 집약한 몇 마디가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꾸는 꿈을 소재로 제시된다.

아버지가 죽은 뒤, 보안관은 꿈에서 두 번 그를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돈을 주었는데, 그는 그 돈을 곧 잃어버렸다(매카시는 소설에서 현대인이 돈 때문에 죄를 짓고 공허한 삶을 산다고 말한다). 두 번째 꿈에서 아들과 아버지는 춥고 눈이 쌓인 협곡에서 다시 만난다. 아버지는 ‘불’을 들고 아들을 앞서 지나간다. 이유야 뭐겠는가. 아들이 오기 전에 어딘가 먼 곳에서 불을 피우며 기다리기 위함이지.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은 그런 거다. 인간이 가지고 살아야 할 마음은 바로 그런 거다.

꿈 이야기를 마친 보안관은 우리를 묵묵히 바라본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나는 ‘억’하는 소리를 질렀다. 무언가 내 안에 쑤욱 들어왔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나는 세상엔 정말 불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따스함이 없으니 우리는 춥고, 그 길잡이가 없으니 우리는 길을 헤맨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카우보이는 죽고, 살인자는 사라지고, 보안관은 길을 묻는다. 그들은 모두 길을 잃은 자들이다. 이야기의 시작엔 카우보이가 있었다. 젊은 카우보이는 죽은 자의 몸을 만지지도, 그의 돈을 훔치지도 말아야 했다. 모든 일은 그의 인간에 대한 무례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끝에서 길을 잃지 않은 건, 웨스턴과 스릴러의 진정한 피를 타고난 영화밖에 없다.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나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서부에 부는 바람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쓸쓸한 마음을 훑고 떠나가는 걸작이다. (ibuti)


* 코맥 매카시는 소설의 제목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시간이 없는 사람은 그 시라도 구해 읽어보길 바란다. 가슴 뭉클한 시다.

* 세상 바깥에서 세상을 보는 토미 리 존스와 기괴한 이미지를 무심하게 표현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에 숨이 막혔다.

* 나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역할에 대해 일부러 별로 말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보안관보다 앤톤 시거에 대해 더 말하고, 더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앤톤 시거인데 더 말할 게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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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 입니다

    2008/03/09 00:08
  2. BlogIcon 산다는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너무나 미국적인 시점에서 그린 영화라 공감이 가지 않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2008/03/10 12:05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다는건님의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도 했구요.

      2008/03/10 21:01
  3. BlogIcon 오공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니, <분노의 저격자>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인트로가 서로 동일하네요..

    <노인을...>은 기어이 한 번 더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관람 환경이 괜찮은 편이어서 푹 빠진 채 감상했습니다..

    치밀하며 섬세한 글, 잘 읽었습니다!~ ^^

    2008/03/10 14:05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시 보실 줄 알았습니다. 제 바람이기도 했구요. 이번에는 좋은 관람이었다니 더 바랄 게 없습니다.

      2008/03/10 21:03
    • BlogIcon 오공훈  댓글주소  수정/삭제

      처음 보았을 때보다는 화질과 사운드가 조금 다운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주 만족스러운 감상이었습니다.
      요즘 제가 벨 보안관과 비슷한 심경이라 더욱 와닿았는 지도 모릅니다.. ^^;

      2008/03/11 09:56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벨 보안관과 비슷한 심경이라... 안 좋거나 힘든 일인가요? 걱정이네요. 모쪼록 잘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2008/03/11 14:18
    • BlogIcon 오공훈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무슨 안 좋은 일을 겪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즘 심정이 그렇다는 의미이지요..
      인간에 대한 비관이랄까, 아무튼 그런 것입니다.
      걱정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

      2008/03/11 17:04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흑, 더 걱정이... 인간에 대한 비관이라고 말씀하시니.

      저도 기분이 좀 그런 하루였습니다. 시사에 갔다가 모영화사의 대표분과 잠시 말씀을 나누었는데, 영화시장이 정말 말이 아니게 위축되었다는 말에 울적했습니다. 그리고 말끝에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말이 나왔거든요. 불법 다운로드가 정말 한 나라의 문화를 비극으로 이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집에 오다 어떤 분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필요한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는 무서운 시대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뭐, 예전이라고 안 그랬겠습니까만, 요즘은 사람에 대한 평가가 너무 가차없고 냉정하지 않나요? 옛날의 온정주의도 문제지만, 요즘의 분위기는, 이건 아니다 싶어요.

      2008/03/11 20:05
  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08/03/12 20:32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영화 작은 화면으로 보면 느낌이 영 안 올 텐데. 영화를 보면서 느낌의 고저가 너무 큰 것도 조절이 좀 필요할 듯.

      2008/03/13 01:11
  5. BlogIcon alla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은 글 잘읽고 갑니다. ^^ 저도 영화,예술의 관한 블로그를 만들고 있는데 같은 <노인>에 대해 쓰셨길래 보러왔습니다. 또 오겠습니다. ^^

    2008/03/28 00:49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도 allak님의 블로그에 가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관해 쓰신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이해하기엔 좀 어려운 글이더라구요.^^ 자주 놀러오시길...

      2008/03/28 01:03
  6. 제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가는 해석입니다..
    no country for old men 묘한 매력이 있는 영화죠.
    결국 영화관에서 세번이나 보게 만들더군요..ㅎㅎ
    파고도 두서너번은 본 영화..
    코엔형제의 영화는 일단 보는 편입니다.

    브래드핏트의 영화도 봤는데..
    저같은 사람한테는 좀 어렵더군요.. 끝까지 보기 괴로웠다는..ㅎㅎ

    2008/04/18 06:37
    •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극장에서 세 번이나! 저도 한 번 더 볼 걸 그랬습니다.

      브래드 피트의 영화라면 <제시 제임스...>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아직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아 미국에서 DVD를 구입했습니다. 지금 오는 중인데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2008/04/19 01:19

Film: HomeVideo2007/11/20 14:01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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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브르 36번가> 36 Quai des Orfevres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걸작 <오르페브르가>의 리메이크인 줄 알았던 <오르페브르 36번가>는 전혀 새로운 범죄 드라마다. 두 경찰의 비극과 복수의 드라마인 <오르페브르 36번가>는 오랫동안 범죄영화와 형사영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프랑스 영화의 명예 회복을 의도한 작품으로서, 그에 걸맞게 프랑스 내에서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오르페브르 36번가>를 찾을 관객은 프랑스 범죄영화의 팬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오르페브르 36번가>는 195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소박한 프랑스 범죄영화는 물론, 장 가뱅과 알랭 들롱과 리노 벤츄라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의 작품과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작 감독이 빚졌다고 인정하는 작품은 마이클 만의 <히트>이다. 콘크리트와 강철의 차가움과 현대적인 분위기가 영화의 스타일을 지배하고 있다. 반면 <오르페브르 36번가>만의 독특한 감성은 고전영화에서 힘을 얻은 결과다. 영화의 원형은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니까 말이다.

   미개봉 해외 신작을 소개하는 ‘KBS 프리미어 페스티벌’의 두 번째 프로젝트에 포함된 <오르페브르 36번가>는 <늑대의 제국>, <화이트 마사이>와 함께 특별판 DVD로 선보였으며, 이어 <갱스터 초치>가 출시될 예정이다. 평균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는 소리와 영상에 비해 메이킹 필름(28분), 인터뷰(14분), 의상테스트 현장(14분), 무기 선택 과정(13분), 포스터 갤러리 등의 부록은 특별판치곤 단출한 편이다. (ibuti, 2006.11. 씨네21 577호)


<오르페브르 36번가: 특별판> 36 Quai des Orfevres(SE)

2004년 / 올리비에 마르샬 / 106분 / 2.35:1 아나모픽 / DD, DTS 5.1 프랑스어 / 한글, 영어 자막 / 태원엔터테인먼트(2장)

< 화질 ★★★☆  음질 ★★★★☆  부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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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Comment2007/07/29 02:29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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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s Who?

<리턴> (이규만, 2007)

* 수술 중 각성: 전신 마취를 한 환자가 수술 도중 의식이 깨어나 수술 중의 모든 통증을 느끼지만 정작 몸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아직 국내 의학계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수술 중 각성’을 겪은 이들은 불면증이나 대인장애, 자살 등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며, 심한 경우에는 수술 중 쇼크사에 이르기도 한다. (<리턴> 보도자료에서 발췌)

10살짜리 꼬마가 ‘수술 중 각성’을 겪는다. 이후 섬뜩한 행동을 계속 벌이던 꼬마는 급기야 한 소녀를 학교 변소에 빠트려 죽인다. 심리 치료를 거쳐 꼬마의 기억은 봉합되고, 꼬마의 가족은 홀연히 한국을 떠난다. 그리고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자, 이제부터 <리턴>의 나머지 스토리를 꾸며보자.
1. 왜 제목이 ‘리턴’인가? : (1) 성인이 된 꼬마가 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2) 봉합됐던 꼬마의 기억이 다시 돌아왔다.
2. 돌아온 꼬마는 무엇을 할 것인가? : 당연히 복수지, 그 외에 또 뭐가 있겠나.
3. 복수의 대상은 누구인가? : 꼬마에게 수술 중 각성을 안겨준 의사 그리고 그의 가족

도입부가 지난 다음, 누구나 위 1,2,3,번 질문을 묻고 대답하는 게 가능하다. 그렇다면 <리턴>에는 뻔히 짐작 가능한 내용 외에 100분 넘게 관객을 끌고 갈 무엇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리턴>에는 그런 능력이 없다. <리턴>은 남아있는 유일한 궁금증- ‘23년 전에 수술 중 각성을 겪은 꼬마가 누구일까’ - 을 물고 늘어진다. 포스터에 있는 4 사람 중, 일단 본인 혹은 가족이 위해를 당하는 사람을 빼면 3명이 남는다. <리턴>은 나머지 3명을 두고 누가 범인인지 헷갈리게 만들기 위해 안타까울 정도로 힘을 쏟는다. 그럼에도 후반부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은 전혀 매끄럽지 못하다. 영화는 영화대로 네 사람 사이를 오가느라 헤매고, 영화 속 인물들은 또 그들대로 우왕좌왕 난리를 피운다. 마지막 부분에 쏟아져 나오는 혼란스러운 설정들은 영화의 미스터리를 강화하기는커녕 영화의 결말에 그럴싸한 설득력을 부여하지도 못한다.

결국 <리턴>은 '돌아온 꼬마 맞히기 놀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술 중 각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라곤 없으며, 끔찍한 기억을 겪은 사람에 대한 어떠한 예의도 없다. 돌아온 꼬마는 단지 미친 어른일 뿐인데, 돌아온 그의 기억에 난데없이 ‘자살한 어머니의 비극'까지 끼어든다. <리턴>은 어디에선가 주워들은 ‘수술 중 각성’이라는 소재를 써먹고자 안달한 결과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나는 이 영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그렇다고 심심풀이로 즐길 오락영화로 보기엔 <리턴>의 대부분은 지겨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시사회에 참석한 모배우는 ‘잘 짜여진 각본’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웰메이드 스릴러’라고 했다. 이 정도 영화에 ‘웰메이드’란 표현이 자연스럽게 붙는 걸 보면 그간 잘 만들어진 한국 스릴러가 드물긴 드물었던 모양이다. (ibuti)

* 개봉예정일 :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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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멍멍흰둥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봤습니다. 시사회에서 지루하게 봤나보네요..;;
    저는 아직 보지를 못해서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영화인데 ... 그 소망이 깨지는건가요 ㅋㅋ

    2007/07/30 15:36
  2.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멍멍흰둥이 > <리턴>에 대한 저의 첫인상일 뿐이에요. 제 소견에 전혀 개의치 마시길 바랍니다. 같이 본 다른 사람은 <리턴>이 흥미로운 스릴러라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2007/07/30 19:25
  3. 영화매니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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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7/3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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