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메츠는 '영화는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단순히 현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면 가능한 말일지 모른다. 그런데 장 뤽 고다르는 여러 가지 구조물을 슬쩍 얹어놓아서 설명 이전에 이해부터 어렵다. 고다르의 작품 중 '사랑과 경멸'은 그나마 (비록 그것이 의도되지 않았거나 단지 표면적인 정도에 머무른다고 하더라도) 집중과 이해가 가장 쉽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그 이유는 <사랑과 경멸>의 소재 혹은 주제가 '영화, 그것도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행위'이며, 영화의 제작 환경 자체도 고다르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상업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은 이탈리아의 카를로 폰티였고, 영화의 전반부는 몰락해 가는 시네치타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했다. 영화 속 미국인 제작자 잭 팰런스는 문화라는 말 때문에 골치가 아파지면 수표책을 꺼내고, 독일영화 황금기의 거장 프리츠 랑은 실명으로 출연해 잭 팰런스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꿋꿋이 철학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브레히트가 할리우드에서 처참한 심정으로 지었던, 짧으나 가슴 저미는 시 '할리우드'를 랑이 읊는 설정이 기막히다). 그리고 돈 때문에 각색을 맡은 프랑스 작가 미셀 피콜리와 그의 아름다운 부인 브리짓 바르도가 있다. 프리츠 랑이 서구 문화의 원류인 '오딧세이'를 찍고 있는 가운데, 잭 팔란스와 미셀 피콜리와 브리짓 바르도 사이엔 성과 권력과 계급적 긴장감이 흐른다(어쩌면 <사랑과 경멸>은 '오딧세이'의 영화적 재연인 동시에, 실제 제작자에게 던지는 농담일지 모른다). 결국 누군가는 죽고, 누구는 떠나며, 누구는 남아서 영화를 계속 찍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돌아온 율리시즈는 눈앞에 펼쳐진 짙푸른 바다를 바라본다. 영화를 바꾼 것이 <네 멋대로 해라>였다면, 지금 다시 영화를 생각하게 만드는 건 <사랑과 경멸>이다. 제임스 모나코는 <사랑와 경멸>을 '담론의 양식들' 시기에 놓으면서, 트뤼포가 던진 두 가지 질문 - 영화는 인생보다 더 중요한가? 그리고 여자들은 신비한가 -을 언급했다. <사랑과 경멸>에다 대고 당신도 한번 물어보라. (ibuti, 2004.04. 씨네21 449호)
<경멸> Le Mepris
1963년 / 장 뤽 고다르 / 103분 / 2.35:1 아나모픽 / 프랑스어 2.0 / 한글, 영어 자막 / 다음미디어
< Comment : <사랑과 경멸>은 낱장 발매가 되지 않았고, 다음미디어판 <장 뤽 고다르 작품집>에 <네 멋대로 해라>, <미치광이 피에로>와 함께 수록, 발매됐다.
이 때부터 글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을까? 이 다음부터 마음에 드는 글이 별로 없다. 내 글이 내 글이 아니다. 보면 볼수록 더 어려운 고다르를 함부로 쓰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사랑과 경멸>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정말이다. (ibuti, 2004.11.18. na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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