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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영화관

'로드무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2/26 길 (배창호, 2004) by ibuti
  2. 2007/10/15 나그네와 마술사 (키엔체 노르부, 2003) by ibuti (2)
  3. 2007/09/03 돈 컴 노킹 (빔 벤더스, 2005) by ibuti
  4. 2007/07/26 빔 벤더스 컬렉션 by ibuti
Film: HomeVideo2008/02/26 18:02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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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길> 시사회장에서 배창호는 자신도 영화를 몇 년 만에 본다고 했다. <정>의 시사회 때와 달리 그는 사뭇 들뜬 모습이었다. 배창호가 시스템 밖에서 고독한 작업을 펼친 지 이제 십 년이다. 과거 화려한 시절을 누렸던 그가 자칫 옹색한 처지를 곰삭힌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길>은 참으로 고요하고 속되지 않은 작품이었으며, 사랑에는 비겁했으나 삶에는 성실했던 장돌뱅이의 길을 따라간 영화는 개인의 소박한 역사와 진중한 로드무비를 고집스럽게 완성해놓았다.

   영화는 결국 감독을 닮는다. <길>은 남자가 마을 어귀로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가 길 밖으로 사라지면서 끝나는데, 한국적 미장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기 위해 그 두 장면만으로도 족하다(필자의 일천한 경험으로선, 이만희와 임권택의 영화 이후 그와 같은 장면을 보지 못했다).

   <길>은 이 시대의 영화들로부터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지만, 작금의 영화가 정작 필요로 하는 무엇인가를 담고 있다. 존재 가치를 잃은 영화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길>은 감독의 진정성이 숨쉬는 희귀한 작품이며, 한국 현대사의 과정에서 잃어버린 가치들을 회복하는 데 영화가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예다. <길>은 과거에 얽매인 자의 빛바랜 향수가 아니라 영화라는 작업으로 스스로의 삶을 구원하고 있는 한 고집스런 감독의 목소리다.

   비아나모픽(그나마 화면비율도 맞지 않는)이라는 절망적인 형태로 제작된 DVD는 부록도 음성해설과 예고편 외엔 별다른 게 없다. 길 위를 걷는 여행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감독이 시대와 주제 그리고 제작과정에 대해 자상하게 말하는 걸 듣던 중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배창호가 <정> DVD에서 한국 최초로 음성해설을 진행했던 게 2001년이었으니, 그가 다시 음성해설을 하는 데 6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셈이다. 그의 다음 음성해설을 듣기 위해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까. 그 답은 물론 한국 영화의 미래상황 위에서 구해질 것이다. (ibuti, 2007.3. 씨네21 594호)


<길>

2004년 / 배창호 / 95분 / 1.74:1 비아나모픽 / DD 2.0 한국어 / 한글, 영어 자막 / 태원엔터테인먼트
< 화질 ★★☆  음질 ★★★  부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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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HomeVideo2007/10/15 10:00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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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와 마술사> Travellers and Magicians

   월드컵 경기에 빠진 어린 승려들이 미소를 머금게 만들던 <컵>이란 영화를 기억하는지? <컵>은 부탄 출신 감독이 만든 첫 번째 영화였고, 감독 키엔체 노르부가 현직 승려임이 알려지면서 작은 화젯거리를 제공한 바 있다.

   <나그네와 마술사>는 노르부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부탄의 시골마을에 부임한 공무원 돈덥은 아메리칸드림에 부풀어 다른 일은 뒷전이다. 친구의 도움으로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된 그는 수도 팀부로 빨리 가야하건만, 차편을 놓친 뒤 길 위에서 승려와 종이장수 부녀와 사과장수를 만나 시간을 보내버린다.

   이어 승려의 입에서 옛 전설 하나가 불려나오자 <나그네와 마술사>는 이야기 안에 이야기 하나를 더한다. 전설 속의 주인공 타시는 돈덥과 다르지 않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향을 동경하던 타시는 어느 날 기묘한 숲에서 길을 잃는다.

   전설은 ‘조신설화’나 ‘페르귄트’ 등을 섞어놓은 듯 어딘가 익숙하며, 돈덥이나 타시의 이야기에 반전 따위는 없다. 게다가 직설적인 표현과 직유법만 살아남은 요즘, 한 편 알레고리의 힘은 필자의 생각보다 훨씬 미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부한 교훈과 종교적 깨달음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선 <나그네와 마술사>는 우리의 마음 곳곳에 어느새 지혜의 향을 퍼트린다. 길을 잃은 자가 길을 찾는다는 이야기, 발을 디딘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말씀은 쉽게 잊힐 유는 아닌 것이다. 속도에 지친 몸을 쉬게 하고픈 여름 저녁,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며 보기에 딱 어울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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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VD는 자연스런 영상으로 표현된 돈덥의 세상과 색감을 부드럽게 변환시킨 타시의 세상을 두루 곱게 재현한다.

   반면 다른 DVD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록들은 찾을 길이 없다. 예고편과 텍스트 형식으로 수록된 감독의 인터뷰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야 할 판이다. (ibuti, 2007.9.1. 중앙Sunday)

<나그네와 마술사> Travellers and Magicians
2003년 / 키엔체 노르부 / 108분 / 1.80:1 아나모픽 / DD 2.0 부탄어 / 한글, 영어 자막 / 대경DVD

< 화질 ★★★★  음질 ★★★  부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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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우유소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보고싶었던 영화 ..

    2007/10/16 10:42
  2. BlogIcon ibut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몇 년 전에 개봉한 뒤 얼마 전에 소리소문 없이 DVD로 출시됐더군요. 그래서 골랐던 작품이에요.
    참, 부산은 잘 다녀오셨는지요.

    2007/10/16 11:42

Film: HomeVideo2007/09/03 22:53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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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컴 노킹>
Don't Come Knocking


   빔 벤더스는 <파리, 텍사스> 이후 20년의 시간이 흐를 즈음 샘 셰퍼드와 새 작업을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한다. 그러니 <돈 컴 노킹>을 <파리, 텍사스>의 후속편이라 불러 문제될 건 없다. 세상을 떠돌던 남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메우려 돌아오고, 눈물을 흘리던 여자는 힘차게 세상을 헤쳐 나왔으며, 어렸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됐다.

   샘 셰퍼드는 새로운 각본을 쓰면서 여전히 슬픔과 외로움을 안고 사는 이방인을 떠올렸다지만 <돈 컴 노킹>에는 옛 <파리, 텍사스>의 황량한 풍경보다 나이 든 남자의 지혜가 자리 잡은 공간이 더 크다. 숨 막히는 고통을 예전에 겪은 남자들이 이윽고 삶의 양면을 두루 살피게 된 것이니, 걸음은 느리고 함부로 소리치는 법이라곤 없다. 벤더스가 더 이상 <파리, 텍사스> 같은 영화를 못 만드는 게 불만인 사람이 혹시 있다면 영화를 다르게 볼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보이는 도로 표지판이 인생을 아는 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엔 ‘DIVIDE 1, WISDOM 52’라고 적혀 있다. 단절되고 소외되는 길은 가깝고, 지혜를 얻는 길은 그리도 멀다는 이야기다.

   DVD에는 따로 음성해설이 없는 대신 방대한 분량의 부가영상을 자랑한다. 로케이션별 인상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촬영일자에 맞춰 기록한 <돈 컴 노킹과의 여행>(94분), 영화 초년생의 영상일기(25분), 메이킹 필름(사진, 12분), 11개의 삭제장면(22분), 감독과 배우와의 인터뷰(15분) 등의 부록을 다 보려면 대략 3시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ibuti, 2006.8. 씨네21 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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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컴 노킹: 특별판> Don't Come Knocking: SE
2005년 / 빔 벤더스 / 118분 / 2.35:1 아나모픽 / DD 5.1 영어 / 한글, 영어 자막 / 태원엔터테인먼트(2장)
< 화질 ★★★  음질 ★★★★☆  부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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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HomeVideo2007/07/26 11:29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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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컬렉션>
 Wim Wenders
 Collection


   나에게 최고의 빔 벤더스 영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다. 아무리 <파리, 텍사스>가 걸작이라 해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감동엔 비할 바가 아니다. 영화는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기에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무성영화 시대에 영화음악을 연주한 할아버지와의 대화로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이후 세 시간 가까이 영사기를 고치는 남자와 아내와 헤어진 남자의 발걸음을 따라가거나 그들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여줄 뿐이다. 자동차가 물에 잠기고, 면도를 하고, 전화를 걸고, 버려진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시를 읽으며 밤을 맞이하고, 하얀 모래 위로 검은 똥을 누고, 아버지를 찾아가 다투고, 신문을 만들고, 극장 매점의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버려진 집을 찾아갈 동안, 아이들은 장난치며 웃고, 한 남자는 영사기 옆에서 자위하고, 어떤 남자는 전날 밤 자살한 아내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독과 서독의 국경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다음 날 헤어진다.

   하지만 이렇다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를 일상을 주제로 한 소품으로 여긴다면 곤란하다. 반대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영화가 그 모든 길과 만나고 헤어지는 여정을 포함하는, 그러니까 삶 자체라고 말한다. 서른 무렵의 벤더스(사진)에게 영화는 세상 전체와 같았을 게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더 이상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는 한 극장주의 말로 끝을 맺는다. 영혼과 눈을 착취하는 영화가 판치는 세상에 던지는 그녀의 과감한 선언은 삼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들어도 가슴 저미는 것이다(옛 버전에는 ‘대기업과 미국 메이저가 위세를 부리는 제작, 배급 시장’을 한탄하는, 그래서 한국의 현실과 비교해 놀라게 되는 대사가 있었는데, 새롭게 마스터된 버전에는 웬일인지 빠졌다). 그러나 그녀는 극장을 폐쇄하진 않겠다고 한다. 미래에 등장할 가치 있는 영화를 위해 극장만은 지키겠다는 그녀의 바람이 그 후 지켜졌을까? 우리는 물론 대답을 안다. 말하기 수치스러운 대답 말이다.

   다섯 편의 벤더스 영화를 모은 작품집이 출시됐다. <빔 벤더스 컬렉션>은 ‘길의 왕’이라 불리는 벤더스의 행보를 밟아보기에 적합한 선택이며, 독일과 아메리카 대륙을 넘나든 발자취에서 벤더스의 미국에 대한 애정과 혐오를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랜드 오브 플렌티> DVD는 인터뷰, 음성해설 등의 부록을 일부 보강해 재출시되는 것이고, 처음 소개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부록으로 보기 힘든 옛 제작현장을 담고 있다. 그 외에 영화기자 정한석의 해설책자가 별도 제공돼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ibuti, 2006.5. 씨네21 552호)

<빔 벤더스 컬렉션> Wim Wenders Collection
<시간의 흐름 속에서> Im Lauf der Zeit (Kings of the Road, 1976) 175분, 1.78:1 아나모픽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 145분, 1.85:1 아나모픽
<베를린 천사의 시> Der Himmel über Berlin (Wings of Desire, 1987) 127분, 1.78:1 아나모픽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9) 100분, 1.85:1 아나모픽
<랜드 오브 플렌티> Land of Plenty (2004) 119분, 1.85:1 아나모픽

1976~2004년 / 빔 벤더스 / 665분 / 1.78.1~1.85:1 아나모픽 / DD 5.1 독일어 (일부 영어, 스페인어) / 한글 (일부 영어, 독일어) 자막 / 태원엔터테인먼트(7장)
< 화질 ★★★☆  음질 ★★★☆  부록 ★★★☆ >(평균)

< Comment : 빔 벤더스가 더 이상 걸작을 만들지 못한다는 불평이 많다. 그런 소리가 듣기 싫은 나 자신도, 가장 좋아하는 벤더스의 영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와 <도시의 앨리스>다. 이 박스세트가 요즘 2만 몇천 원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마음이 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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