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ian Patient
<호랑이와 눈 La Tigre e la nev> (로베르토 베니니, 2005)
<호랑이와 눈>의 지상명제는 ‘사랑’이다. 아니, 로베르토 베니니의 모든 영화의 지상명제는 ‘사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주인공이 존재하고, 그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주인공은 죽음이라도 받아들일 태세다. <호랑이와 눈>는 사랑스럽다. 이야기가 사랑스럽고, 이야기의 배경이 사랑스럽다. 달과 별이 가득한 뽀얀 화면 아래에서 사랑을 느끼지 않기란 힘들다. 그러나 <호랑이와 눈>은 몹시도 지겨웠다. 적어도 나에겐.
사랑하는 여자(베니니의 부인 니콜레타 브라스키가 또 다시 상대역으로 분했다)가 포화 가득한 2003년의 바그다드에서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다. 모든 일을 마다하고 이라크로 날아간 남자는 조그만 몸의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그녀가 깨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의사의 지시를 따라 온갖 대책을 강구한다. 신통하다는 사람을 찾아가 묘약을 만들고, 잠수부의 산소 호흡기를 그녀의 코에 갖다 대보고, 멀리 구호단체까지 찾아가 영양제를 구한다. 그의 마음이 감동을 주고, 그의 행동을 웃음을 주기를 두 시간, <호랑이와 눈>은 그렇게 흘러간다.
<호랑이와 눈>은 베니니 자신의 걸작 <인생은 아름다워>(1997)와 동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 조금도 멀리 나아가지 못한 영화다.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과 그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남자의 노력, 그 외에 <호랑이와 눈>에는 별다른 게 없다. ‘순수한 사랑’은 어느 때고 인간을 감동시키는 게 가능한 만고불변의 소재다. 베니니가 그 소재를 선택한 데는 아무 죄가 없다. 다만 그가 고갈되는 창의력을 자기 스스로 만든 관습으로 자꾸 메우려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어떤 권력도 소유하지 못했던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과 달리, <호랑이와 눈>의 주인공은 폐허가 된 바그다드에서 유럽의 시민이라는 권력을 잘도 이용한다. 미군 앞에서 수시로 “나는 이탈리아인이요”라고 외치는 그의 대사나, “미국군이 와서 어서 정리해줬으면”하는 이라크 의사의 바람이 가시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베니니의 슬랩스틱 코미디에는 왜 그렇게 많은 수다가 따라붙는지 모르겠다. 슬랩스틱 코미디는 원래 몸의 언어로 이루어진 게 아니던가. 쉬지 않고 입을 놀리는 베니니는 행여 자신의 의도를 관객이 못 알아들을까 조바심을 내는 것 같다. 베니니는 특별한 이야깃거리를 찾아 나서기보다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는 게 낫지 싶다. (ibuti)
* 톰 웨이츠가 깜짝 출연해 자신의 노래 <You can never hold back spring>를 들려준다. <다운 바이 로>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덕분이리라.
* 극중 베니니의 이름 ‘아틸리오’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아버지이자 이탈리오의 대표적 시인인 ‘아틸리오 베르톨루치’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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