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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20 에릭 로메르 회고전 : <아름다운 결혼> by ibuti
Film: Special Column2007/10/20 23:20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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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any of us refrain from building castles in Spain? _ La Fontaine

<아름다운 결혼 Le Beau Mariage> (에릭 로메르, 1982)


베아트리스 로망 Beatrice Romand (사빈느)
앙드레 뒤솔리에 Andre Dussollier (에드몽)
아리엘 동바슬 Arielle Dombasle (클라리스)

에릭 로메르의 필모는 대부분 연작으로 채워져 있다. 그 중 ‘사계절 이야기’과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가 많이 알려진 반면, 그 사이에 존재하는 ‘희극과 격언 6부작’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아름다운 결혼>은 ‘희극과 격언 6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희극과 격언 6부작’의 매 작품은 격언으로 시작되는데, <아름다운 결혼>의 격언은 ‘내가 스페인에 성을 쌓겠다는데, 누가 뭐라 그러는 게야?’이다(로메르가 좋아하는 우화작가 장 드 라퐁텐이 쓴 글에서 따왔다). 각자 마음속의 상상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뜻쯤 되겠다.

사빈느는 르망에서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산다. 그녀는 고향마을의 골동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파리의 예술학교에서 고고학 학위를 준비 중이다. 유부남 화가와 사귀던 그녀는, 어느 날 그와의 잠자리에 부인과 아이들의 전화가 걸려오자 홧김에 헤어지기로, 그리고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해버린다. 물론 그녀에게 다른 남자는 없지만, 독립적인 성격의 사빈느는 결혼에 있어 사랑하는 남자라는 구체적인 존재보다 자신의 결심이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친구 클라리스의 파티에 초대된 사빈느는 그녀의 사촌 에드몽을 소개 받는다. 그리고 클라리스의 충동질이 한몫해, 사빈느는 에드몽을 자신의 남편감으로 결정한다. 변호사이고 그런대로 잘 생긴 편이며 성격도 좋아 보이는 그가 그녀를 결혼상대자로만 여기면 된다고 쉽게 생각한 사빈느의 작전은,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의 주인공 남자들은 상대편 여성과의 관계 때문에 욕망과 도덕적인 갈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어진 두 편의 시대극 <O 후작부인>과 <갈루아인 페르스발>은 특이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를 시대물로 변주한 것들이다. 그러면 80년대에 만들어진 로메르 영화들은 어땠을까? ‘희극과 격언 6부작’과 이전 작품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자 주인공들이 갈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에서 여자 인물도 중요한 게 사실이나, 그녀들의 내면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고, 반면 어리숭한 남자들의 모습만 드러난 편이었다. ‘희극과 격언 6부작’에서는 그것이 역전되어 남자들은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여자들이 각자 고민하고, 나름대로 계산도 하고, 힘들어한다. 왜 이렇게 바뀌게 된 걸까? 혹시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복수한다고 볼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역할 전환 사이에 아무런 관계나 의미가 없는 걸까?

로메르의 영화는 대부분 평범한 현실적 문제를 다룬다. 동지였던 고다르나 트뤼포, 샤브롤의 영화와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차이점이다. 사빈느가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들어보자. 그리고 로메르가 창조한 다른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들도 떠올려 보자. 어떤가, 보통사람들과 거의 비슷하지 아니한가. 그의 영화에는 극적인 장치는 별로 없으며, 당연히 드라마틱한 연기나 이야기 전개를 기대하기 힘들다. 도대체 재미라고는 없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많은 게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들이 평소에 고민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위대한 존재가 되지 못해서, 최고의 부자가 되지 못해서 고민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는 없다. 반면 우리들이 고민하는 것은 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그 중 하나가 남녀간의 문제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를 끊임없이, 어깨의 힘을 빼고 보여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로메르가 좋다.

그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따스한 눈길로 대하는 사람이다. 연출된 영화라고 해도 그는 극에 개입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냥 방관하는 것만은 아니다. 억지로 감정을 부추기지 않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극중 인물들의 마음과 거의 일치를 이루게 하는 것은 그만이 가진 능력으로 보인다. 로메르 영화의 주인공들은 주로 어리석은 감정의 흐름과 엉뚱한 행동 때문에 힘들어 하지만, 마지막에 나타나는 성찰과 희망을 보면 감독이 주인공들의 주변에 항상 머물러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사빈느가 파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이 한 예다. 결혼을 위한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을을 바꾼 그녀는 이제 첫 만남의 짜릿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줄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 이어 열차 안에서 마주 앉게 된 남자와 사빈느는 서로를 훔쳐보기 시작한다(그는 영화의 처음에 잠시 얼굴만 나왔던 바로 그 남자다). 미소가 남자의 입가에 머무르는 그 짧은 순간, 우리는 기쁨을 경험한다. 로메르의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게다.

위에서 나는, 연작이 바뀌면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역전되었느니, 갈등하는 주인공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으면 하고 바란다느니, 그런 말을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본 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나의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는지 모른다. 이 지혜로운 프랑스의 감독에게 일상적인 관계로 때때로 힘들어하는 우리는 언제나 따스한 시선으로 보담을 대상이다. 그러니 남자건 여자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ibuti, 2001.4.16)

* 2001년 7월경에 열렸던 ‘에릭 로메르 회고전’ 당시 긁적거린 글이다. 그 때 회고전은 성황리에 끝났다. 얼마 전부터 에릭 로메르 회고전이 다시 열리고 있다. 그래서 옛글을 꺼내봤다.

* 이 글을 쓸 즈음 에릭 로메르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으며 <영국여인과 공작>을 공개했다(몇 년 뒤 나는 <영국여인과 공작>의 DVD를 국내에서 출시할 수 있었다). 당시에 여든 넘은 감독이 신작을 발표해서 놀랍다고 생각했는데, 로메르는 얼마 전 신작을 또 발표했다. 노익장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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