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rth of A Legend
<인톨러런스 Intolerance> (D.W.그리피스, 1916)
"나 이전의 세상은 얼마나 초라했던가. 나는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나는 온 세상을 스크린 속으로 옮겨놓았다." - D.W.그리피스
Ⅰ. 먼저 타비아니 형제가 만든 <굿모닝 바빌론 (Good Morning Babylon, 1987)>을 떠올려보자. 영화의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건축가 집안에서 자란 두 형제다. 미국으로 건너온 그들은 D. W.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 (Intolerance, 1916)>에 참여하는 기회를 잡게 되고, 전대미문의 바빌론 세트를 짓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이윽고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두 형제는 전쟁터에서 죽어가면서도 자신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기록하는 인물로 남는다. 전설이 된 영화 <인톨러런스>에 참여한 허구의 이탈리아 인을 빌려 타비아니 형제가 말하려 했던 건 무엇일까. 이탈리아 영화의 저력 혹은 이탈리아인의 몸속에 흐르는 영화의 피?
실제로 <인톨러런스>에 큰 영감을 준 작품은 이탈리아 감독 조반니 파스트로네의 역사극 <카비리아 (Cabiria, 1914)>이니, 타비아니 형제는 <굿모닝 바빌론>을 통해 이탈리아 문화의 자존심과 영화 정신을 말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들 이탈리아인에게 그리피스는 단지 영화의 흥행과 스펙터클에만 목숨을 걸었던 모방가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피스가 만든 영화의 주인공은 엄연히 그 자신이었으며, 분명한 사실은 그가 스스로 전설을 만들어가면서 결국 초기 영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피스는 주제로 읽히는 영화를 만들었고, 장편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확립했으며, 공간을 재현함에 있어 혁신적인 실험을 계속함으로써 영화만의 독자적인 표현 양식을 탄생시켰다. 그를 통해 영화가 원시적인 형태에서 고전영화의 시대로 돌입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Ⅱ. 1875년, 켄터키의 농가에서 태어난 그리피스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낼 때부터 장차 무대에서 생업을 이어나갈 것을 꿈꾼다. 그러나 배우로서나 극작가로서나 그에게 좋은 기회는 다가오질 않았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은 ‘바이오그래프’ 영화사였다. 1908년부터 감독을 맡을 수 있었던 그는 1913년까지 무려 500편에 육박하는 작품을 생산해 낸다. 소위 5센트 영화라고 불리는 아주 짧은 작품들이었지만, 그는 카메라의 움직임, 편집, 조명등을 익히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해 나갔다. 하지만 한두 릴 이상 되는 작품에는 관심이 없는 바이오그래프사와의 인연을 계속할 수 없었던 그는 ‘뮤추얼사’와 ‘릴라이언스-머제스틱사’와 손잡으면서 몇 편의 장편 영화 실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1914년이 되었을 무렵, 자신이 직접 제작을 맡아 주변에서 모은 자금으로 열두 릴짜리 영화 <국가의 탄생 (The Birth of a Nation, 1915)>을 만든다.
<국가의 탄생>이 영화 언어에 끼친 기술적 측면의 영향보다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리피스가 <국가의 탄생>으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당시 영화가 엄청난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리피스는 독립 제작자로서 기반을 다졌을 뿐 아니라 향후 자신의 영화에 대한 비전을 품는다. 한편 그리피스는 이 거대한 영화의 환영에 빠져있었던 만큼 이 영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영화의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성향 때문에 지금까지도 논쟁에 사로잡혀 있는 그리피스는 이후 보다 보편적이고 순수한 주제로 이동한다(하지만 두 세계의 대립과 외부권력의 압박 같이, 그리피스가 즐겨 다룬 정치적 면모는 이야기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국가의 탄생>이 없었다면 그 반대에 위치한 <부서진 꽃봉오리 (Broken Blossoms, 1919)>는 나오지 않았을 게다). 그 첫 번째 영화가 <인톨러런스>다.
<인톨러런스>은 애초에 <법과 어머니 The Mother and the Law>라는 제목의 소규모 작품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국가의 탄생>의 성공에 고무된 그리피스는 이 작품을 거대한 스케일로 확장할 계획을 세웠다. 1914년부터 시작된 작업은 1916년까지 이어졌고, 당초 현대를 배경으로 했던 작품은 ‘고대 바빌론, 1세기 유대, 16세기 프랑스, 20세기 초의 미국’으로 시간과 공간을 넓혀 나갔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이 페르시아에게 정복될 무렵을 배경으로 하는 바빌론 편에서는 지배자였던 벨샤자르와 그의 권위에 대항하는 신권, 그리고 그를 사모했던 마운틴 걸의 이야기가 맥을 이루고 있다. 유대 편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루어진 부분인데, 온갖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기적을 전하는 예수와 그를 모함하는 바리세인들을 그리고 있다. 프랑스 편은 샤를 9세와, 섭정에 나선 그의 어머니 카트린느 등의 구교 세력이 성 바톨로뮤 날에 신교도인 위그노들을 집단 학살했던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 끝으로 미국 편은 거리로 내몰린 가난한 가족의 가장이 살인 누명을 쓰게 된 사연과 재판 과정을 담고 있다.
Ⅲ. 지금도 <인톨러런스>를 처음 접하는 관객은 시각적 성취에 먼저 압도당한다. 그리피스는 1900년 초에서 1910년대에 걸쳐 나왔던 이탈리아산 대작영화류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비록 그리피스는 이를 부정하고 있으며, 릴리안 기쉬는 그리피스에겐 다른 영화를 볼 시간조차 없었음을 밝히고 있지만).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바빌론 세트일 텐데, 당시의 기술 수준을 고려해보면 그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컴퓨터 그래픽은 말할 것도 없고, 특수효과에 관한 초보적인 기술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그가 행한 방법은 단 하나 - ‘원하면 원하는 대로 짓는다.’는 것이었다.
LA의 선셋대로에 지어진 세트는 길이로만 수 킬로미터에 이르렀으며, 바빌론 성벽은 거의 90 미터에 달했다. 크레인이 개발도 되기 전, 익스트림 롱 쇼트에 잡힌 바빌론 성벽과 내부 장면은 그 자체로 영화의 위대함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인톨러런스>는 초기 영화 언어 탐구의 집합체라고 할 만한 모든 성과를 보여준다. 영화의 초창기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리피스에게 이것은 정녕 분에 넘치는 행복이었을 텐데, 그가 자신의 위치를 구축하고 영화의 결실을 거두는 데는 촬영을 맡은 빌리 비처(혹은 G. W. 비처)의 힘이 컸다.
바이오그래프 시절부터 그리피스와 비처는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 초기 영화의 역사를 하나씩 써나갔다. 무성영화 시절의 단조로운 기법들을 탈피해 다양한 거리를 두는 등 카메라가 움직이게 만들었으며, 아이리스 인 & 아웃, 다중노출 등의 광학 기법을 활용했고, 다양한 각도의 조명과 인물 배치를 개발해 나갔다. 꼼짝하지 않았던 카메라가 영화와 연극의 경계선에 위치했다고 본다면, 그리피스가 자유롭게 해방시킨 카메라는 드디어 자신만의 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화면의 너비와 높이를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마스킹 기법을 사용했던 장면이나, <인톨러런스>의 후반부인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사랑’에서 이중 노출로 잡아 놓은 장면들을 보다 보면, 훗날 아벨 강스가 <나폴레옹 (Napoleon, 1927)>에서 영화의 스크린을 옆으로 쭉 펼쳐 놓은 건 장난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후에도 그리피스와 계속 작업을 해 나간 비처는 마침내 <부서진 꽃봉오리>에 이르러 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미장센을 창조한다.
비처 외에도 <인톨러런스>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에서, 우리는 20세 초반 미국 영화의 한 역사를 목격하게 된다. <탐욕 (Greed, 1925)>의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과 <씬 맨 (The Thin Man, 1934)> 시리즈의 W. S. 밴 다이크가 조감독을 맡았고, <드라큐라 (Dracula, 1931)>와 <프릭스 (Freaks, 1932)>의 토드 브라우닝이 각본에 일조했으며, 음악을 담당한 칼 데이비스는 <탐욕>,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1925)>, <나폴레옹> 등의 걸작에 참여한 바로 그 사람이다. 여기에 크레딧에도 오르지 못한 빅터 플레밍, 앨런 드완 같은 훗날의 유명인까지 다 늘어놓자면 끝도 없다.
Ⅳ.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인톨러런스>는 애석하게도 당시의 관객이나 평단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만다. 당시 1차 세계 대전에 끼어들려고 하던 미국의 분위기에서 ‘완벽한 사랑만이 영원한 평화를 가져온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인톨러런스>가 외면당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 영화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거부감은 전개방식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물론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 <인톨러런스>의 상영 시간이 거의 4시간에 육박했던 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전작 <국가의 탄생>이 3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 성공했던 것과 비교해 본다면, 4시간짜리 <인톨러런스>는 스타일 면에서 관객에게 어떤 시각적, 정서적 폭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인톨러런스>는 이전의 영화들처럼 연대기 순의 전개를 따르지 않았다. 불연속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네 시대의 이야기 안에서 관객은 일관된 흐름을 읽기는커녕 표면적인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시대의 긴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편협한 인간의 속성’을 복잡하게 얽힌 미로 속에 담으려 했던 그리피스의 노력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피스는 각 시대의 사이사이에 요람을 흔드는 릴리안 기쉬를 등장시키고, 월트 휘트먼의 시구에서 따온 구절 - ‘끊임없이 요람은 흔들린다.’를 삽입했다. 불변성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그 장면은 현실도 천국도 아닌 장소와 몽롱한 분위기로 인해 오히려 영화의 모호함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도의 결과로, 그리피스가 연속 편집과 고전적 편집을 통해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효과를 넘어선 새로운 경지에 올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영화의 전반부에 느린 흐름으로 연결되던 이야기는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빠르게 진행되었으며, 마지막 20분에 이르러서는 거의 숨 막힐 정도의 속도감을 발휘한다. 이 즈음에 이르면, 요람을 흔드는 여성의 알레고리의 개입 없이 각 시대의 사건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교차편집 되는데, 시공간의 연결을 통한 동시성의 개념은 관념의 결합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영상의 배치에 따른 불연속적인 사건의 연결은 ‘인톨러런스, 편협, 불관용’이란 주제로 연결된다. 이후 몽타주 이론에 충실했던 소련의 감독들이 <인톨러런스>에 주목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극적 사건이 역동적인 편집을 통해 논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발견했던 것이다.
Ⅴ. <인톨러런스>를 포함한 그리피스의 영화는 대개 아래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가족을 포함한) 사회의 불합리, 폭력과 위선은 줄곧 인간을 억압하는데, 그것으로 인해 인간의 순수성이 고통을 받는다. 그런 이유로 사회악은 단죄되어야 하며 갈등은 해소되어야 한다고 그리피스는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시스템과의 충돌을 통한 해결이란 단계로 이전되지는 못한다. 게다가 그리피스는 그 상태에서 너무나 순진하게도 순수한 사랑이 지배하는 세계로 돌입하고자 하면서, 해결이 아닌 지향점만을 제시하곤 했다. <인톨러런스> 이후 더 이상 스펙터클한 영화를 만들기 힘든 상황에서, 그리피스는 점점 더 ‘사랑’을 절체절명의 주제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니까 <인톨러런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인톨러런스>를 만들며 서사드라마에서 멜로드라마로 진입한 그리피스는 이후 자신의 걸작 중 대부분을 멜로드라마 내에서 탄생시키게 된다. 그리피스가 영화에 끼친 영향을 거론할 때 기술적인 부분만을 따진다면 당연히 <국가의 탄생>이나 <인톨러런스>를 우선 언급해야 할 것이다. 반면 <인톨러런스>에서 물꼬를 튼 멜로드라마적인 감수성은 영화사에서 무시하기 힘든 중요성을 갖는다. <부서진 꽃봉오리>나 <동쪽으로 가는 길 (Way Down East, 1920)> 등에서 드러나는 눈물과 통속성은 다가올 멜로드라마의 원형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멜로드라마라고 하면 더글라스 서크 영화의 주인공보다 릴리안 기쉬가 먼저 떠오른다. 10대의 소녀 같은 얼굴로 온갖 청승맞은 얼굴을 지으면서 약자의 고통을 표현하던 그녀와 그리피스의 멜로드라마는 잘도 어울렸다.
<인톨러런스> 다음부터 그리피스는 그야말로 눈물의 역사라고 할 영화 인생을 걷는다. 파산을 맞았던 그리피스는 <인톨러런스> 중 현대부분과 바빌론 부분을 따로 편집해 영화를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영화의 원본을 훼손하는 바람에 4시간에 가깝던 영화는 현재 3시간 정도의 부분 밖에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발췌본 상영의 결과 또한 좋지 않았다. 1919년엔 찰리 채플린,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매리 픽포드와 공동으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를 탄생시키기도 했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를 평생 따라다녔다. 나중에 제작된 20여 편의 영화 중 그 어떤 것도 <국가의 탄생> 만큼 성공하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인톨러런스>처럼 의욕에 넘쳐 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전에 역사극을 무척 좋아했던 그리피스는 신기하게도 신비하고 신화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을 따름이며, 모든 할리우드 스타와 감독들이 손과 발을 새겨놓은 광장에 가도 그의 흔적은 없다. 스크린 위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보여주었으며, 현재의 영화가 존재할 수 있도록 터전을 제공한, 그러나 대중에겐 잊혀진 그리피스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용감무쌍함으로 세계를 누볐으나 지금은 어디에 묻혀있는지조차 모르는 위대한 모험가를 떠올린다. 따지고 보면 <타이타닉 (Titanic, 1997)>은 <인톨러런스>와 영화의 1백년에 보내는 가장 적절한 화답이다. ‘그 무모한 시도, 시대가 취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의 집대성, 사랑이라는 영원한 주제’를 결합한 두 작품이 영화의 여명기와 영화의 1세기가 마치는 지점에 각각 위치하고 있는 게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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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어요.
2008/10/10 16:43ㅎㅎ 바라보다님, 이렇게 짧은 댓글을 달아놓으시다니. 제가 바라보다님 집에 자주 놀러가지 않아서 화나신 듯. ㅎㅎ 농담입니다. 조만간 놀러갈게요.^^
2008/10/12 23:12이 영화를 보기전에 약간 고민을 했네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가의 탄생'을 먼저 볼까 아니면 무성영화 시대의 블록버스터 '인톨러런스'를 먼저 볼까 고민을 한거죠. 그러다가 정서적으로 불편하지 않을 것같은 이 작품을 먼저 보게되었네요.
2009/01/19 18:02제가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이 영화가 저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힘이 있었는지 꽤 긴 러닝타임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지루하지 않게 봤답니다. 1910년대라는 시대상황을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카메라 기법과 편집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네요. 온세상을 스크린에 담겠다는 감독의 호연지기가 절로 느껴졌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 마쉬란 여배우의 연기가 인상깊었는데요...솔직히 말하면 자신과 동거하는 건달을 총으로 사살한 여인역을 맡은 미리엄 쿠퍼란 여배우가 참 이쁘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ㅎㅎ;;;
이제 '국가의 탄생'을 봐야할 것같은데 며칠 뒤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취임식을 한다는 뉴스를 방금 전에 접하고 나니 좀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그리피스가 하늘에서 이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네요. 그래서 생각난김에 스파이크 리 감독의 '버스를 타라'라는 영화도 다시 한번 봐야겟네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흑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솔직히 말해주었던 영화라고 생각되거든요.
아참 그리고 타비아니 형제의 '굿모닝 바빌론'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러고보면 ibuti님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숙제 하나가 더 생기는 느낌이 드는게...^^;
<국가의 탄생>이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종차별 영화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걸 전부 그리피스의 죄로 돌리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없지 않아요. 그 시대 백인의 평균적인 의식과 비교했을 때, <국가의 탄생>이 특별히 더 인종차별적인 영화인 건 아니거든요. 게다가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를 따지자면 더 그렇고요. 물론 제가 영화의 주제와 시선에 동조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만, 이 영화를 평가할 때 그런 점을 먼저 고려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2009/01/20 23:55<굿모닝 바빌론>은 참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ibuti님 말씀을 듣고 관련 글들도 찾아보니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많더군요. 개인적으로 100% 납득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똘레랑스의 정신으로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보는 습관을 더 길러야 할 듯 싶네요. 그러고보면 가야할 길이 먼듯 싶습니다. ^^;
2009/01/21 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