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Fall Asleep
<인베이전 The Invasion> (올리버 히르시비겔, 2007)
잭 피니의 SF소설 <바디 스내처>는 냉전시대의 가장 뛰어난 기록 중 하나다. 소설은 즉각 영화로 만들어졌고, 이후 몇 편의 아류작과 세 편의 리메이크를 낳았다. 영화의 만듦새와 별개로, 지금껏 영화로 만들어진 <바디 스내처>가 잘 먹힌 이유는 분명하다. 동서의 이념분쟁이 선명했거나, 반대로 그 경계가 모호했을 때, 그러니까 인간이 주변상황으로부터 소외되어 불안과 공포를 느낄 때 <바디 스내쳐>는 극도의 감정적 반응을 동반한다.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돈 시겔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1956)과, 동서의 거짓 화합과 미국의 절망적 시기에 나온 필립 카우프먼의 <외계의 침입자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1978)는 시대 분위기와 결합하며 섬뜩함을 더했다.
반면 아벨 페라라의 1993년 작품 <바디 에이리언 Body Snatchers>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흥미로워진 경우다. 당시는, 클린턴이 미국의 대통령이 때였고, 새로운 미국은 2년 전 부시의 아버지 부시가 이끌던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사실을 되새김질 하고 싶지 않았을 게다. 그러나 10년 뒤 아들 부시가 다시 이라크에 쳐들어갔다. 이번에는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함으로써 세계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들의 명분이 거짓이었음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군대를 내세워 힘을 과시하는 ‘하드 바디’ 정권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고립된 군 캠프에서 전개되는 <바디 에이리언>은 군사 강국 미국의 현실을 예언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 번째 리메이크 <인베이전>은 어떤가? 사고를 당한 우주왕복선의 잔해에 우주의 괴생명체가 묻어오고, 그 생명체와 접촉한 인간은 수면 상태에서 DNA가 조작된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해결책을 마련하는 동안, 주인공은 외계생명체에 면역 반응을 보이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건다.
<인베이전>은 무덤덤한 미국인에게 억지로 전투욕을 불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부시처럼 보인다. 이전 세 편 영화가 영화 내에서 시대를 들춰내지 않고도 시대를 은유하는 데 성공했던 것과 반대로, <인베이전>은 영화 내내 미국인에게 악의 대상인 것들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다. TV 화면에 나오는 이라크와 북한은, 심지어 영화의 인물조차 눈길 한번 안 주건만, 계속해서 영화의 카메라에 잡힌다. 게다가 과거의 적들은 미국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적은 군사대국 미국이 적이라 부르기에도 초라한 존재들이다. 싸움보다 원조를 내심 바라고 있을 나라를 적으로 규정하고 매달리는 <인베이전>에서 설득력이라곤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더 끔찍한 건 영화의 결말이다. <신체 강탈자들의 침입>, <외계의 침입자>, <바디 에이리언>은 뒤로 갈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영화였다. 암담한 현실은 그래서 관객을 무서움에 떨게 했다. 곁에 있어줘야 할 사람들이 나와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황, 그것이 그들 영화의 진정한 공포였다. 그러나 <인베이전>에서는 해결약이 개발되고, 약을 투입하면 감염이 치유되며, 우습게도 감염의 기억까지 없어진단다. 여기서 웃지 않으면 바보 아닌가. 영화를 보는 동안 한 번도 털이 서는 경험을 안겨주지 못했던 이 우라질 스릴러는 끝까지 사람을 웃게 만든다. 아무래도 <인베이전>은 부시의 홍보영화 같다. 영화의 유치한 마지막은, 자기만 믿으면 미국의 평화는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부시에게나 어울릴 설정이다.
<엑스페리먼트>과 <몰락>으로 요즘 독일감독 중 드물게 화려한 이력을 쌓던 올리버 히르시비겔은 할리우드로 와 단번에 몰락하고야 말았다. 할리우드란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다. 독일 출신의 수많은 선배 감독들이 할리우드에서 나락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그는 기억해야 했다. 그리고 때론 그들이 어떻게 할리우드를 이용했는지 알아내야 했다. 히르시비겔은 선배들의 교훈을 따르지 못했다. 우리가 보는 <인베이전>은 그가 의도한 영화도 아니라고 한다. 제작자의 요구에 따라 다른 사람의 각본과 편집과 연출이 더덕더덕 붙여지는 과정을 봐야 했던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런 영화에 자기 이름이 남겨진 걸 과연 다행으로 삼아야 할까? 한국 감독들이 할리우드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이유와 상관없이 거기로 가서 섣불리 영화를 찍겠다는 감독이 없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한국의 명망 있는 감독들의 실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그들의 영혼이 빼앗길 것을 염려해서다. (ibuti)
* 궁금한 질문 하나. 인간이 모두 괴물로 변해 가는데 내 아들만 살려두는 게 과연 이성적으로 타당한 처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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