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 과학> La Science des Reves
미셸 공드리의 영화가 복잡하고 어수선해 보였던 건 필립 카우프만의 정신없는 각본 탓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터널 선샤인> DVD의 음성해설에서 카우프만이 도리어 공드리에게 그 이유를 묻자, 공드리는 “볼 때마다 이전에 못 본 장면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라고 답할 따름이다.
마침내 공드리 혼자 각본을 쓴, 그래서 그의 내면이 온전히 반영된 <수면의 과학>은 이전 작품보다 더 뒤죽박죽이다. 오죽했으면 제작자가 메이킹 필름에 나와 “영화 속 공드리의 모습만 있다면 그의 영화를 제작하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할 정도일까. 주인공 스테판이 ‘꿈 수프’에 넣기 위해 들춰내는 ‘잡다한 생각, 그날 보고 들었던 것, 온갖 감정, 과거의 추억과 뒤얽힌 오늘의 추억’을, 공드리는 따로 뒤섞어 영화라는 이름으로 내놓는다.
당연히 <수면의 과학>을 보다 궁금한 게 무지 많았을 당신에게 DVD의 부록 사이로 여행하기를 권한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남자 스테판과 이웃 여자 스테파니의 사랑이야기 안에 숨겨진 것들을 속속들이 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공드리가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샬롯 갱스부르, 사샤 부르도와 함께 맡은 음성해설은 카우프만과 했던 예전 것보다 훨씬 경쾌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프랑스판 DVD에서도 영어로 음성해설을 진행했던 공드리와, 마찬가지로 비영어권 출신인 세 사람의 영어 음성해설은 짐작대로 떠들썩해,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즐겁기로 소문난 공드리 영화의 현장 분위기를 음성해설로 대신 전하는 것 같다.
공드리는 베르날이 왜 자기 목소리를 일부 더빙 처리했냐고 물으면 슬쩍 넘어가버리고, ‘스핀 아트’ 효과를 두고 ‘구토 장면’이라고 농을 치며, 말이 없는 갱스부르를 대화에 끌어들이고자 때때로 뚱딴지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고 우스갯소리로 일관하진 않는 것이, 장면과 주제에 관한 각자의 생각과 의도,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만 알고 있는 사실들, 카메라 뒤로 가려진 에피소드를 빠트리지 않고 언급한다.
음성해설의 끝에서 스테판과 스테파니의 미래에 대해 베르날이 비관적으로 예상한 반면 갱스부르가 낙관론을 펴자, 공드리는 “남녀 관계에선 여자의 결정이 우선이다”라며 선뜻 여배우를 따른다. 공드리의 농담에서 진심을 찾는 걸음은 그의 영화를 읽는 것만큼 헷갈리면서도 흥미롭다.
음성해설 다음엔 40분짜리 ‘메이킹 필름’이 기다리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동화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환상적인 특수효과가 전부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졌다는 건데, 본격적인 촬영 전에 몇 개월에 걸쳐 진행된 현장이 상세히 공개된다. 꿈에 등장하는 세상이 주인공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창조물인 만큼 느낌이 묻어나는 수작업을 선택했다는 공드리의 말에 설득력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어 모형과 미술 담당자와의 인터뷰(11분), 감독과 배우 알랭 샤바와의 영상 통화(7분) 등을 들러본 다음엔 마지막으로 ‘관객과의 대화’(19분)를 빼놓지 말고 봐야 한다. 특별시사에 관객으로 참석한 인지심리학자 등의 전문가들과 ‘꿈과 현실’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공드리는 상담이라도 받는 듯 진지한 모습이다. 영화의 제목에 ‘과학’을 괜히 붙인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ibuti, 2007.6. 씨네21 606호)
<수면의 과학: 특별판> La Science des Reves (The Science of Sleep) (SE)
2006년 / 미셸 공드리 / 106분 / 1.85:1 아나모픽 / DD 5.1 프랑스어&영어&스페인어 / 한글, 영어 자막 / 와이드미디어(2장)
< 화질 ★★★★ 음질 ★★★★ 부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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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최고의 배우
2008/06/15 17:31볼수록 정이 가는 얼굴이죠. 이 영화에선 특히 귀여웠던.
2008/06/16 10:58이터널 선샤인을 보면서 공드리는 피해가야 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됐죠.. -_-
2008/06/20 18:36어, 제 짐작에 좋아하실 만한 감독이라고 봤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전 <이터널 선샤인>을 무지 좋아했거든요. 바라보다님께선 뭐가 마음에 안 드셨을까요?
2008/06/21 23:26이제는 기억에서도 가물해졌는데...여튼..동어반복, 추락, 안이함..뭐 이런 파편만 떠올라요.
2008/06/27 19:22<수면의 과학>을 보면서 처음엔 바라보다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어요. 극장에서 잠시 졸면서 보기도 했고요. 공드리 영화는 피곤하거나 성가실 때 보면 좋은 결과를 못 낳더군요. 정신없는 영화라는 사실은 분명하니까요.
2008/06/28 11:15이터널 선샤인보고 너무 좋아서 수면의 과학도 찾아봤는데,,
2008/06/28 23:12좀 난해하더군요..혼자서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든 영화였어요;;
잘 읽고 갑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그냥 감성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게 이 사람 영화로 쉽게 들어가는 방법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2008/06/29 15:06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