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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캐럴, 두 개의 박스세트

Music Life 2009/12/19 18:32

Bob Dylan, Sufjan Stevens:
They Sing Christmas Carol


나의 음반 컬렉션에 크리스마스캐럴은 한 장도 없다. 내 기억에 크리스마스캐럴 음반을 구입한 것 딱 두 번이다. 큰 누이가 준 돈으로 동네 레코드가게에서 팻 분의 전설적인 음반 <White Christmas>를 샀었고(이보다 뛰어난 캐럴집이 있을까), 한참 후에 머라이어 캐리의 끔찍한(그렇다, 나는 그녀의 다른 음반처럼 이것도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캐럴 모음집을 구입한 적이 있다. 앞의 것은 누이의 명령을 따른 것이니 내 의지가 아니었으며, 후자의 것도 큰 조카가 하도 사달라고 졸라서 선물한 것이니 현재 내 리스트에는 없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들을 용도로 음반을 구입하는 걸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올해 연말에 무려 두 장의 크리스마스캐럴 음반을 구입했다. 그것도 박스세트에 담긴 것으로! 외로워서 크리스마스캐럴을 들으려고? 천만에, 그럴 리가, 난 아직 죽지 않았거든. 내 손에 들어온 두 크리스마스 음반의 주인공은 수피얀 스티븐스(본인 소개하는 걸 들으면 수피양이라고 발음하는 것 같기도 하고)와 밥 딜런이다.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가수 때문이다. 스티븐스의 음반은 뒤늦게 알게 된 것이고, 딜런의 것은 따끈따끈한 신보다. 남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행위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두 양반이라, 무슨 영문인가 싶어 구입해봤다. 결과는, 만족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마스캐럴을 더 구입할 마음은 없다. 혹시 롤링 스톤즈가 캐럴을 녹음하면 또 모를까. 



<Songs for Christmas> _ Sufjan Stevens


수피얀 스티븐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박스세트를 알게 된 얼마 전이다. 평소 특이한 친구란 건 알았으나, 크리스마스트리를 예쁘게 그려놓은 두툼한 캐럴 박스세트를 본 순간 웃음부터 터뜨렸다. 언제 이런 것까지 만들었단 말이야! 당장 집어 들었다. EP형태의 다섯 장 음반을 모았고, 아기자기한 부록까지 끼워주는 박스세트 치고는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안 그래도 샀겠지만. 

2001년 12월, 스티븐스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브루클린의 집에서 녹음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2001년을 에피파니의 해라고 말했는데, 아마도 그 해에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틀렸다면 누가 말해주길 바란다). 스티븐스는 노래를 부르고 녹음한 것을 CR-R에 담은 다음 스티커를 붙여 가족과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 그 해까지 계속된 5장의 작업을 박스세트에 담아 발매하기로 결심한다. 각각의 EP에 깃든 시간의 흔적(그는 ‘정신’이라 부른다)을 간직하고 싶었던 그는 오리지널 녹음에 별다른 손질을 하지 않은 채 세상의 친구들에게 박스세트를 내놓았다.

그런데 왜 6장이 아닌 5장일까? 2004년엔 크리스마스 노래 작업을 하지 못한 탓이다. 그는 최고 걸작인 <Illinois>를 녹음하느라 고뇌의 시간을 보냈노라고 고백한다. 5장의 EP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스티븐스가 포크록과 인디음악계의 거목으로 우뚝 서게 된 바탕은 그의 집념이 아닐까. 보통 사람은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 보내는 것으로 때우는 시간, 그는 음반을, 그것도 몇 년에 걸쳐 연이어 작업했다. 그가 쉰 개가 넘는 미국의 주에 관한 음반을 기획한다고 했을 때,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리고 <미시건>과 <일리노이즈>가 띄엄띄엄 발표되는 걸 보고, 언제 끝마칠 건가 걱정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침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사회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이며,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그가 음악을 계속한다는 점이다. <Songs for Christmas>라는 결과물에서 나는 그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Noel>(2001), <Hark!>(2002), <Ding! Dong!>(2003), <Joy>(2005), <Peace>(2006)라는 제목을 단 5장의 음반은 크리스마스 노래의 고전들 사이로 스티븐스의 노래를 더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초기엔 자신이 작곡한 걸 한두 곡만 넣었던 그는 뒤로 가면서 점점 더 많은 자기 노래를 선보인다(<Peace>는 10곡 중 6곡이 스티븐스의 것이다). 혹시 가정용 녹음과 크리스마스캐럴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평범하고 심심한 음반일 거라고 속단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니다, 라고 말해주겠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음반에 수록된 <Come Thou Fount of Every Morning>과 <What Child is This Anyway>, 그리고 세 번째 음반에 수록된 <O Holy Night>를 만나보라. 스티븐스가 편곡과 작곡에 기울인 노력과, 단아한 동시에 치밀한 연주와, 그의 서정적인 목소리는 이 음반을 들을 만한, 그리고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네 번째 음반의 <Hey Guys! It's Christmas Time>와 다섯 번째 음반의 <Christmas in July>, <Star of Wonder>는 또 어떤가. 그의 뛰어난 작곡 솜씨가 발휘된 세 노래는 <일리노이즈> 음반에 끼워 넣어도 괜찮을 정도다. 스티븐스가 스스로 말하듯이, 이 음반 가운데 최고의 트랙을 뽑는 건 그 자체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리고 굳이 선택할 필요도 없다. 36분에 이르는 <Peace>를 제외하면, 매 앨범의 재생 시간은 20분 내외여서 듣고 즐기기에 부담이 없거니와, 어느 것을 선택해도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 게다가 <Come on! Let's Boogey to the Elf Dance!>처럼 활기찬 노래들이 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꼭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어도 그 효용도가 높은, 아마도 유일한 크리스마스캐럴 모음집이 아닐까 한다.

오리지널 녹음을 그대로 담았지만, 스티븐스는 이 박스세트가 그냥 작은 컬렉션에 그치기를 바라진 않았다. 크리스마스의 선물인 만큼 그는 뭔가 다른 기쁨(그의 표현을 따르면 ‘장식물’)이 들어 있기를 원했다. 파스텔 톤 그림의 예쁜 박스를 뜯으면, 별개 포장된 다섯 개의 음반, 아담한 책자(<아이스 스톰>의 원작자인 리키 무디의 에세이, 직접 연주하며 부를 수 있도록 기타 코드까지 적어놓은 가사집, 스티븐스의 3개의 글, 사진과 카툰이 내용물이다), 커버를 이용해 만든 아동용 스티커, 스티븐스의 가족사진(웃고 있는 부인과 반대로 말쑥한 얼굴의 그와, 아빠처럼 색다른 표정의 두 아이라니!)과 카툰 <가장 끔찍한 크리스마스>를 양면에 담은 인쇄물을 손에 들고 하나씩 감상하노라면 행복감이 절로 나온다.

* 두 번째 음반에는 톰 이튼이 만든 애니메이션 <Put the Lights on the Fire>이 담겨 있다. 전형적인 미국 애니메이션 속에 스티븐스 음악의 익살스러움을 잘 표현했다.

* 아마존닷컴에 가면 어떤 사람이 올려놓은 부록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참! 엄청 화려한 부록을 기대하진 말기를. 스티븐스의 음악에 맞춰 소박한 모양새다.



<Christmas in the Heart> _ Bob Dylan

내 생각에, 밥 딜런은 ‘크리스마스캐럴’을 절대 부르지 않을 가수의 리스트의 맨 앞에 설 사람이다. 크리스마스트리를 형형색색으로 장식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행복하세요.”라고 말하며 다니고, 친숙한 사람끼리 둘러 앉아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고 인간의 평안을 기원하는 시간과 음유시인의 존재가 도무지 겹쳐지지 않는 거다. 그러므로 <Christmas in the Heart>는 내게 (뜨악한 의미로) 혼란을 준 두 번째 밥 딜런 앨범이라 하겠다. 물론 그 첫 번째는 <Slow Train Coming>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Slow Train Coming>은 이번 캐럴 음반을 이해하도록 돕는 단초일지도 모른다(그렇게 두 앨범은 연결된다). 

<노 디렉션 홈: 밥 딜런>과 <아임 낫 데어>를 보면서 내린 결론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밥 딜런에 대한 딱딱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었고, 두 영화의 가장 큰 공헌은, 밥 딜런이란 사람은 우리가 규정하는 게 불가능한 자유로운 영혼과 다양한 모습을 지닌 인물임을 재확인하도록 일깨웠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hristmas in the Heart>를 트레이에 넣기 전까지 잔뜩 의구심을 품었던 걸 보면, 나는 박제된 딜런을 마음속에 단단하게 가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언제쯤이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또 하나 놀랍게도, 밥 딜런은 <Christmas in the Heart>를 캐럴의 고전으로 채웠다. 시인인 그가 이런 자세를 취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크리스마스의 행복감을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그것에 더해 그냥 크리스마스를 즐기기를 권하고 싶었던 것 같다. 거기에 자신의 메시지나 목소리를 따로 첨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음반의 마지막 곡인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은 ‘Amen'으로 끝난다. 확신과 동의, 밥 딜런이 어떤 멜로디와 가사를 덧붙이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캐럴을 부르면서 품었던 마음이다. 딜런은 <Christmas in the Heart>의 미국 내 로열티 전액을, 굶주린 자를 구호하는 단체인 ‘Feeding America'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걸쭉하고 느린, 그리고 가끔 박자와 어긋나는 딜런의 목소리가 캐럴과 한 몸을 이루고 있었고, 나는 시작부터 끝까지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에 어색하고 신기했으나 두어 번 듣다보면 그 매력에 고개를 끄덕이며 즐기게 된다. 개구쟁이 할아버지의 짓궂은 캐럴은 팻 분의 그것과 정확히 정반대의 위치에 자리한다. 음반의 4면짜리 부클릿의 뒷면엔, 섹시한 속옷 위에 산타 복장을 걸친 베티 페이지의 모습이 박혀있다. 보통 자기 얼굴을 커버에 담던 딜런은 4면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름답게 미소 짓는 페이지가 오른 손에 들고 있는 산타의 인형, 그것에 딜런은 자기 모습을 심은 게 아닐까.

6인조 밴드는 아저씨들이 동네의 클럽에서 연주하듯 자연스럽고 단순한 반주에만 신경을 쓴다. 여자 보컬들이 예스럽고 화사하게, 남자 보컬들이 활기차고 매끄럽게 딜런의 목소리를 받쳐줄 때는 낯간지러울 정도지만, 기억하라, <Christmas in the Heart>는 50년대 스탠더드 팝과의 만남을 의도하고 있음을. 딜런은 <실버 벨>, <노엘>, <북치는 소년>을 비롯한 15곡의 캐럴을 익숙하나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들려준다. 어린아이들은 이 음반이 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Christmas in the Heart>는 적당히 때 묻은 성인을 위한 캐럴 모음집이다.

* 밥 딜런의 요즘 음반들은 ‘일반판’과 ‘한정판’의 형태로 발매되곤 한다. <Christmas in the Heart>에도 한정판이 따로 있는데, 일반판을 권한다. 한정판 박스세트는 커버를 그대로 사용한 크리스마스카드 5장을 선물로 줄 뿐이면서 가격은 거의 두 배다. 그 내용물에 적잖이 실망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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