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스탠리 큐브릭, 1971)
폭력에 관한 한 1971년은 영국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다. 그 때까지 어떤 영화도 보여주지 못한 폭력 장면이 담긴 영국영화 세 편이 내리 개봉되면서 당시 영국의 암울했던 사회분위기와 겹쳐 떠들썩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켄 러셀의 <악령들>과 샘 페킨파의 <어둠의 표적>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예술과 혁명의 시대인 1960년대를 갓 빠져나온 1970년대가 폭력적 현실과 부닥칠 것임을 예언했다. 그런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셋 중 마지막으로 개봉한 <시계태엽 오렌지>는 가장 혹독한 시련에 직면했다. 언론은 폭력과 강간과 마약의 교향악인 <시계태엽 오렌지>가 폭력적인 청년문화를 매력적으로 그렸다는 비판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었고, 결국 영화는 큐브릭이 거주하던 영국에서 25년이 넘도록 상영되지 못했다. 그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건이었다. 앤서니 버지스가 원작소설을 쓰면서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버지스가 <시계태엽 오렌지>를 쓴 배경에 대해선 이런저런 말이 많다. 그의 아내가 강간을 당해 결혼생활이 위기에 처할 뻔한 게 그로 하여금 소설을 쓰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러시아 여행 중에 거리의 폭력배로부터 느낀 위협을 소설로 옮겼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폭력적인 십대를 주인공으로 1960년대의 거리문화와 사회상을 묘사한 <시계태엽 오렌지>에는 폭력을 선동하려는 의사가 절대 없다고, 생전의 버지스는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원작에서 버지스가 역설하고자 하는 주제는 마지막 몇 페이지에 함축되어 있으나, 안타깝게도 1, 2부의 충격과 그 여파는 끝 부분의 중요한 목소리를 종종 묻어버리곤 한다. 소설을 읽지 않았거나,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사람들이 버지스와 큐브릭을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인간으로 비판하는 건, 많은 부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큐브릭에게 원작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한 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각본을 담당했던 테리 서던이었다. 큐브릭은 소설을 읽었으나 영화화가 별로 내키진 않았다. 알다시피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알렉스 일당이 쓰는 은어는 ‘내드샛’이라는 것으로, 버지스가 러시아어와 런던의 속어 등을 직접 섞어 만든 그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큐브릭은 대중도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 내다봤다. 큐브릭이 혁신적이고 대담한 시도를 서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는 점은 그에겐 대중과 평단을 주의 깊게 의식하는 쇼맨 성향 또한 강했다는 사실이다. 관객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보여주려 하지 않았고, 관객이 놀라는 것도 바라지 않았던 큐브릭이 <시계태엽 오렌지>의 작업을 거절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큐브릭이 결국 <시계태엽 오렌지>를 연출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에 그가 느꼈을 작가로서의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짧은 줄거리 안에 변화무쌍한 이야기와 화려한 액션이 결합된 작품이 필요했던 큐브릭에게 <시계태엽 오렌지>는 둘도 없는 선택이었다. 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으나,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들로 인해 MGM사의 경영진이 교체되는 바람에 큐브릭은 여러 영화사에 부정적인 인물로 낙인 찍혔다. 게다가 MGM사가 그의 필생의 프로젝트인 <나폴레옹>마저 거절하자, 큐브릭은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거의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를 찍어(시대와 공간을 짐작하기 힘든 <시계태엽 오렌지>의 많은 부분은 실제 런던 근교에서 촬영됐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길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큐브릭은 사악하면서도 매력적인 주인공 알렉스가 셰익스피어의 창조물인 리처드 3세에 버금가는 최고의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배우였다. 큐브릭은 알렉스 역할을 맡을 배우가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시계태엽 오렌지>를 시작할 마음이 없었다. 어느 날 운명처럼 린제이 앤더스의 <만약에...>를 보던 큐브릭은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말콤 맥도웰이란 배우를 발견했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포획물을 거두기 위해 직접 전화를 걸었다. 큐브릭이 <시계태엽 오렌지>를 연출한 세 번째 이유는 작가로서의 자기 위치를 재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다 건너 자신이 살았던 미국에서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 향후 ‘뉴 아메리칸 시네마’란 이름으로 불릴 작품들을 만들어내자, 큐브릭은 혁명을 이끄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간 만들어오던 장르영화가 아닌, 전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젊은 녀석들이 만들고 있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을 만들겠다는 욕망을 품었다. 어쩌면 <시계태엽 오렌지>는 큐브릭이 만든 가장 순수한 예술영화일지도 모른다. 큐브릭이 힘을 쏟았던 장르영화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컬트영화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시계태엽 오렌지>는 그 탄생에서부터 각별한 운명을 타고났던 것이다.
버지스가 각색을 맡아주길 바랐던 큐브릭은 곧 자기가 각본을 더 잘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해 비교적 빨리 대본을 완성했다. 그런데 정작 영화 촬영 중에 더 많이 사용하고 들여다본 건 원작이었다. 배우들도 두꺼운 대본이 아닌 얇은 소설을 들고 다녔고, 큐브릭은 촬영할 때마다 소설의 페이지를 먼저 소개한 다음에 어떻게 찍을지 의논했다. 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고, 그래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이제 어떻게 될까, 응?’이다. 아마 큐브릭도 현장에서 그 말을 흔히 사용했지 싶다. 그 결과, 영화의 엔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은 원작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알렉스는 4인조로 구성된 십대 문제아 패거리를 이끄는 두목이다. 그들은 가벼운 약에 취한 채, 법과 질서의 허약한 틈을 타 폭력을 휘두르고 성을 탐닉하며 돈을 갈취하는 악행을 거침없이 저지른다. 그러나 믿었던 패거리의 배반으로 알렉스는 범행을 저지르던 현장에서 경찰에 잡히고, 교도소 안에서 몇 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빨리 자유의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죄수를 강제로 개조하는 프로그램인 ‘루도비코 요법’의 실험대상으로 자원한 알렉스는 뛰어난 성과를 보여 마침내 풀려난다. 하지만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권력이 심어놓은 통제 프로그램에 따라 반응하는 노예로 전락해버린 알렉스는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고자 자살을 감행한다. 물론 그의 자살은 실패로 끝나는데, 그가 겪은 비극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알렉스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기회를 얻는다. 영화의 논란은 이어지는 결말이 소설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에 대한 수많은 분분한 의견 중에는, 끝 부분이 삭제되어 발행된 미국판 소설을 큐브릭이 읽은 탓에 영화의 엉뚱한 결말이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소설과 영화의 상이한 탄생배경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직접 경험한 비극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 버지스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 십대 소년들이 언젠가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랄 것을 기대한 게 당연했고, 또 그런 내용으로 소설을 끝냈다. 소설의 시작부분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는 15세 소년이었던 알렉스는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성인으로 진입하는 나이인 18세 남자로 자라 있다. 소설의 주인공 알렉스는 그렇게 고백한다. ‘난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됐어. 형제들, 바로 철이 든다는 것이겠지. (중략) 이 이야기를 끝내는 지금 난 더 이상 어리지 않아. 알렉스는 어른이 되었단 말이야. 그렇고 말고.’ 한데, 영화의 주인공 알렉스는 끝에서 “난 확실히 치료됐다”라고 말하면서도 (소설의 알렉스와 달리) 그 동안 즐겨왔던 쾌락적 삶을 포기할 마음이라곤 없어 보인다. 큐브릭은 폭력을 선동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감정, 인간의 의지, 인간의 구원’ 같은 버지스의 주제에 심각하게 관심을 두는 척하지도 않았다. 언뜻 보기에 고리타분한 도덕률과 소시민적 삶을 옹호하는 듯한 소설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을 리 없는 큐브릭은 영화가 차가운 블랙 유머로 끝나도록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현대영화에 더 관심을 기울인 큐브릭이었으니, <시계태엽 오렌지>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누가 뭐래도 <시계태엽 오렌지>는 큐브릭식의 <모던 타임즈>다.
영화의 개봉 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시계태엽 오렌지>가 전설이 되는 데 오히려 일조했으며, 그것은 몇몇 평자들로 하여금 <시계태엽 오렌지>가 과대평가되었다고 말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응에 가장 먼저 당황한 건 물론 큐브릭이었다. ‘수다스럽고 지겹기만 한 영화’라는 로저 이버트의 혹평은 차라리 평범한 편이었는데, 급기야 프레드 M. 헤싱거(Fred M. Hechinger)가 뉴욕타임즈에 쓴 글에서 ‘파시즘의 기운’을 운운하자 발 빠른 쇼맨 큐브릭은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다. 그는 뉴욕타임즈의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의 영화가 오독되고 있음을 구구절절 밝혔고, 사이트 앤 사운드지와의 인터뷰에선 ‘<시계태엽 오렌지>와 사회적으로 위협적인 폭력 사이엔 연결점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적인 파장은 갈수록 커져갔고, 영화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큐브릭조차 이로 인해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재판정에 선 모든 십대 문제아들이 손쉽게 <시계태엽 오렌지>를 들먹이는가 하면, 어떤 남자가 강간을 하던 도중 (알렉스가 그랬듯이) <싱잉 인 더 레인>을 불렀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받은 큐브릭이 배급을 맡은 워너사에 그 사실을 알린 뒤, 워너는 큐브릭과 가족에게 영국에서 더 이상 <시계태엽 오렌지>를 상영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큐브릭이 죽을 때까지 지켜졌다. 버지스도 TV에 나와 끝없이 공격받고 있던 큐브릭을 옹호하긴 했으나, 내심 소설의 엔딩을 바꾼 큐브릭을 용서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버지스는 자기가 쓴 소설이 큐브릭 영화의 원작으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했다. 소설이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십대 소년의 이야기라면, 영화는 자유의지에 대한 찬양으로 읽힌다. 소설과 영화 둘 다 인간이 시스템의 어릿광대인 기계장치로 사는 걸 바라지는 않았지만, 소설은 오렌지처럼 밝고 신선하고 활기찬 유기체를, 영화는 통통 튀는 말썽쟁이 오렌지를 원했던 것 같다. (ibuti)
* '스탠리 큐브릭 회고전' (서울아트시네마, 2007.11.26~12.2)을 맞아 발간되는 소책자용으로 쓴 글이다.
'Film: Special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Scene by Scene (13)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중 ‘인류의 여명’ (2) | 2007/11/27 |
|---|---|
| 스탠리 큐브릭 특별전 : <시계태엽 오렌지> (0) | 2007/11/22 |
| Scene by Scene (12) : <그들 각자의 영화관> (1) (0) | 2007/11/04 |
| 에릭 로메르 회고전 : <아름다운 결혼> (0) | 2007/10/20 |
TRACKBACK :: http://cinema5.tistory.com/trackback/670
-
Subject: 스탠리큐브릭의 충격적인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Tracked from 레벨시팔쩜넷 삭제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감독 스탠리큐브릭 Stanley Kubrick 출연 말콤맥도웰 패트릭매기 마이클베이츠 앤서니버지스의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한 1971년 스탠리큐브릭 감독의 작품이다. 본인은 이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십년이 넘도록 수십번은 본듯하지만 아직까지도 난해함과 충격적인 장면(1971년 영화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들은 새로움을 안겨준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시계태엽은 인공적인(기계)것을 말하고 오..
2008/12/01 00:53




글이 어땠나요?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